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한 끼 식사, 패밀리 밀Family M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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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 서울 방배동에 있는 더 그린 테이블에는 김은희 셰프만 이야기할 수 있는 치유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감수성이 넘치지만, 과학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그녀만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더 그린테이블 쿡북>에는 김은희 셰프가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겪었던 이야기와 메뉴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 아름답게 실려있다.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요리를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

요리사가 되기 전 다니던 회사에서는 각자 주어진 책상 사이에 높은 칸막이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료들이지만 각자 독립된 작은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상사와는 출퇴근 시간에 인사를 나누는 것 외에는 거의 부딪힐 일이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라 나쁘진 않았지만 삭막했던 공간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더 그린테이블’을 시작한 뒤로는 주방의 요리사, 홀의 직원들과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전에 다니던 회사처럼 각자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험난한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에 오른 한 가족과도 같은 기분이다. 힘든 일과를 함께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서로의 손을 모아 반짝반짝 빛나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주방 팀을 볼 때 흐뭇함을 감출 수 없다. 이들은 초긴장 상태가 되는 점심, 저녁 시간을 제외하고는 앞치마를 두른 순한 양이 되어 재료 손질과 프렙에 몰두한다. 또 다른 전투를 위한 치열한 준비 시간이지만, 왠지 모를 평온함이 감도는 이 시간, 같은 곳을 향해 달리는 이들이 있어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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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그루비주얼

런치 서비스가 끝나고 오후 3시가 되면,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한 끼의 밥을 먹는다. 소박하지만 갖가지 채소와 육류, 해산물로 만들어낸 식사로, ‘패밀리 밀’ 또는 ‘스태프 밀’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패밀리 밀이라는 단어가 더 좋다. 가족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많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심혈을 기울여 이 식사를 준비한다. 프렌치 레스토랑이라서 직원들도 양식을 먹을 것 같지만 대부분 한식으로 챙겨 먹는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식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뜻한 밥을 새로 짓고 매일 다른 찌개나 국을 끓여 준비한다.

남은 재료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재료를 일부러 구매해 반찬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날은 포크커틀릿을 하기 위해 돼지 등심 부위를 일부러 사기도 하고, 자반고등어를 사서 뼈를 모두 발라 1인분씩 잘라 팬에 고소하게 구워 먹기도 한다. 오징어는 레스토랑 메뉴에 없는재료지만 자주 구매한다. 겨울철에는 화이트 와인에 익힌 홍합 와인찜을 하기도 하고 설날에는 쇠고기 떡국을 끓여 함께 먹기도 한다. 그 외에 치킨 포트 파이, 핫케이크 등 다양한 메뉴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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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그루비주얼

단 하나 절대 허락되지 않는 게 라면이다. 라면 맛있는 거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만, 일이 바쁘고 힘들어 피곤하다는 이유로 한 번 라면을 끓여 먹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원래 주방 일이란 게 끝이 없는 것이고, 어떤 이유로도 라면은 절대로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많이 바쁜 날에는 차라리 음식을 시켜 먹는 쪽을 선택한다. 또 식사를 거르는 것도 되도록 말리고 있다. 가끔 식사를 거르는 친구들이 많은데, 고된 일을 하면 으레 배가 고파지는 게 당연하고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데 식사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릴 적 밥을 먹지 않으면 학교를 보내지 않았던 어머니의 가르침이 생각나 조금이라도 꼭 챙겨 먹인다.

건강한 식사 한 끼에 힘을 얻고 피로도 풀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식사 후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자유 시간을 갖는데 책을 읽기도 하고, 낮잠을 자거나 옥상의 허브 밭에 물을 대기도 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는 등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다. 매일 같은 식사와 휴식 시간이 주어지지만 매번 새롭다. 모든 시간이 의미가 있음에 힘을 얻는다.

 

About 김 은희

김 은희
저자 김은희 요리사는 손맛 뛰어난 어머니 밑에서 자연스럽게 요리의 참맛을 익혔으며 요리와는 무관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웹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03년 돌연 미국C.I.A로 요리 유학을 떠난 특이한 경력을 지녔다. 현재 그녀는 더 그린테이블의 요리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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