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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보양식” – 우유의 숨겨진 이야기

단오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하사했다는 제호탕이란 음료가 있다. 오매육, 사인, 백단향 등 몸에 좋은 약재들로 만들었다는 제호탕은 원래는 우유로 만든 식품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불교 용어에서 ‘제호’란 우유를 정제해 만든 다섯 가지의 음식 중 최상급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 제호탕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유가 아닌 한약재로 교체된 것은, 그만큼 우유가 귀한 식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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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나무위키

우리 조상들이 우유를 거의 먹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농사 밑천인 송아지의 성장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유를 채취하는 장면을 보면 ‘착취’에 가까우며 어린 송아지들은 엄마 젖이 아닌 가공된 우유를 먹는다. 문정왕후 밑에서 권력을 휘둘렀던 정난정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은 주된 이유가 바로 왕이나 보양을 위해 조금씩 먹던 타락죽을 노비들까지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구한말 고종은 종종 기생을 궁에 데려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하는데, 초조 반상(이른 아침상)으로 나오는 타락죽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이렇게 왕의 승은을 입은 기생은 우유를 나눠 먹은 기생이라는 의미로 ‘분락기(分駱妓)’라고 불렸다. 우유가 이렇게 귀했으니 드라마 ‘대장금’처럼 설렁탕에 우유를 넣어 맛을 내는 건 요즘과는 달리 수지 타산이 안 맞는 일이었다.

source : 궁중음식연구원
타락죽 source : 궁중음식연구원

그러나 근대화가 되고 양식이 들어오면서 우유는 완전식품으로 불리며, 성장기에 꼭 섭취해야 할 음식이 됐다. 우유를 많이 먹어야 키가 큰다는 말은 상식이 됐고 학교에서는 사실상 반강제로 우유급식을 시켰다. 이는 칼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식 식단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지금은 우유라면 없어서 못 먹는 필자이지만 왠일인지 이렇게 의무적으로 먹어야 하는 우유만큼은 정말 맛이 없었다. 학교에서 먹기 싫어 가방에 넣은 채 집에 가져오면 중간에 팩이 터져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1980년대 신생 우유 회사인 파스퇴르사는 업계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국내 최초로 저온 살균 우유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우유들은 건강에 나쁘다며 끊임없이 비방 광고를 한 것이다. 외국에서는 우유 가공 과정을 아예 파스퇴르 처리라고 부를 정도로 저온살균이 보편화했지만, 당시만 해도 우유 업계에는 고온살균이 정석처럼 굳어져 있었다. 어쨌거나 동종업계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도 부자 동네를 상대로 상당한 이윤을 남겼던 파스퇴르사는 IMF가 터지고, 다른 회사들에 추월당하면서 부도를 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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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bbs.goodnews.or.kr
우리나라에서는 우유나 유제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데다, 맛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국 우유를 맛본 사람들은 한국 우유가 유난히 싱겁다고도 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홋카이도가 우유의 ‘성지’로 불리며 다양한 우유와 유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철저한 위생 관리를 통해 짜낸 무가공 우유를 맛볼 수 있으며, 벚꽃잎으로 싸서 발효시킨 사쿠라 치즈는 유럽의 치즈들과 동등하게 대우받는 거의 유일한 아시아권의 치즈이다.

과자와 케이크, 스프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는 우유는 의외로 칵테일에도 종종 쓰인다. 달콤한 커피 맛으로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깔루아밀크가 대표적이며, 버번위스키와 우유를 섞은 ‘카우보이’, 달걀을 섞어 만드는 에그 낙 등이다. 흰자는 거품을 내고 노른자는 설탕과 섞어준 다음 뜨거운 우유를 천천히 붓는다. 흰자 거품을 위에 올린 후 넛멕(육두구) 가루를 조금 뿌려 주면 완성이다. 어른들 버전으로는 위스키나 코냑을 섞기도 한다. 에그 낙은 불면증이 있을 때 잠을 푹 자기 위해 마시는 칵테일로도 알려졌다.

 

source : mygourmetconnection.com
깔루아칵테일 source : mygourmetconnection.com

한편 우유가 완전식품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다. 다만 한국인 중에서는 유당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으며, 이런 경우는 우유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

About 정 세진

정 세진
프리랜서 라이터. 아시아투데이, 뉴스1 등에서 기자로 근무. 주간한국에 음식 칼럼을 기고하는 등 여러 매체에서 푸드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으며, 문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한 음식의 세계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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