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도 맛으로 승부하는 과학이다

Editor’s Note : 서울 방배동에 있는 더 그린 테이블에는 김은희 셰프만 이야기할 수 있는 치유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감수성이 넘치지만, 과학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그녀만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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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린테이블 쿡북>에는 김은희 셰프가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겪었던 이야기와 메뉴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 아름답게 실려있다.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요리를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불 그리고 물, 소금, 향신료, 허브 등의 양 조절은 요리사 개개인의 본능과 습관에 의하는 점이 더 큰 것 같지만 결국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적으로 얼마만큼의 양을 넣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요리 한 접시를 완성할 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재료를 고르는 것부터 손질하는 법(어떻게 자르는지에 따라 채소의 맛도 변한다), 어울리는 조리법을 골라서 숙달된 동작으로 만들고 적절한 시점에 간을 한 뒤(우리는 소금, 후추만 사용한다) 조리 시간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에는 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어야 하는지 아리송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노심초사하며 요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곤 했다. 지금이야 처음보다 훨씬 편해졌지만, 여전히 긴장을 한다. 아마 그건 평생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겉으로는 여유로워 보여도 머릿속으론 수많은 생각의 정전기들이 번쩍번쩍 일어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그래야 멋진 요리 한 접시가 완성되니까.

수비드Sous-vide는 프랑스어로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라는 의미이다. 30년 전 프랑스의 공학박사 부르노 코소Bruno Coussalult가 요리에 처음 시도했다. 어찌 보면 정말 심플하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수비드 기계에 재료를 넣어서 낮은 온도로 굉장히 긴 시간 동안 기다리면 부드러운 조직으로 변한다. 그 상태로 먹기보다는 전통적인 조리법을 한 번 더 거친 후에야 내가 원하는 맛이 나온다.

나와 수비드의 인연은 2004년 뉴욕에서 요리학교를 다닐 시절에 처음 시작되었다. C.I.A는 학기 중간에 한 레스토랑을 정해서 18주간 인턴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학교에 돌아가 나머지 반을 공부한 뒤 졸업하는 시스템으로 진행되는 곳이다. 이때, 인턴십을 할 레스토랑을 찾기 위해 두 달여간 매주 뉴욕의 레스토랑 주방을 돌아다녔다. 그중 한 캐주얼한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처음으로 수비드 기법으로 조리하는 걸 보게 되었다. 브레이징한 쇠고기를 진공 팩에 포장하고 오더가 들어오면 그 봉지째 뜨거운 물에 익혀서 내는 걸 보고 순간, ‘아니 뭐 이런 공장 같은 곳이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정성이 없어 보여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인데, 한편 상업적으로 굉장히 편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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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ww.globalmeatnews.com

졸업 후 근무하게 된 ‘불레이Bouley’에서 인기 메뉴 중 하나인 수비드 치킨 브레스트를 처음 봤을 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비단결 같은 닭 가슴살의 텍스처라니. 커다란 포트에 작은 기계가 꽂혀 있고 물이 돌아가고 있던 그곳에서 고기 요리를 담당하는 요리사가 진공 팩 안에 든, 버터밀크에 담긴 닭고기 상태를 자주 확인했다. 40분 정도 익힌 후 따뜻하게 유지시키는 기계에 진공 팩째로 넣어두고 서비스할 때 봉지를 찢어 오븐에 넣어 겉면을 짧은 시간 안에 말려 뜨거운 상태로 내는 방식이었다. 그 후에 일했던 레스토랑에서는 푸아그라를 수비드로 익혔고, 메인 요리에 쓰는 고기도 수비드로 익힌 뒤 겉면을 시어링해서 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쇠고기가 어찌나 부드럽던지…. 푸아그라는 기름기를 거의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완전히 녹여 만든 거라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시도가 참 좋았다.

‘더 그린테이블’의 메뉴에도 수비드 기법이 많이 쓰인다. 어떤 이들은 고기를 너무 연하게 만들어 특유의 씹는 맛을 빼앗아간 재미없는 방식이라고 매도하지만, 속은 촉촉하고 부드럽게, 겉면은 고소하게 익혀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을 적절히 혼합해서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가히 환상적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렇게 전통적인 조리법에 과학적 접근을 가미하여 음식을 만드는 것이 참 재미있다.

허브와 올리브 오일에 매리네이드한 흰 살 생선은 수비드로 익힐 경우 스팀으로 익힌 느낌이 들어 담백하고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 대구, 농어, 우럭, 광어, 송어 모두 마음에 드는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연어는 조금 달랐다. 기름기가 많은 연어는 껍질째 팬에 굽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2층 비스트로 메뉴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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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린 테이블에서 맛 볼 수 있는 팬프라이 연어  source : 그루비주얼

그래서 1층 코스 메뉴에 나가는 연어 요리에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 수비드 기법을 써봤지만 그것보다는 110。C로 낮게 예열한 오븐에 10~15분간 슬로 쿠킹으로 익히는 방식이 더 좋았다. 메뉴를 만들 때 생선 메뉴가 가장 재미있다. 진한 소스보다 과일로 퓌레를 만들어 곁들이거나 전통적인 미네스트로네, 팬 소스, 딜과 바질 오일을 잔뜩 넣은 허브 브로스, 잉글랜드 클램차우더 등을 다양하게 곁들일 수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육류인 한우 안심, 채끝살, 오리 고기, 돼지 안심, 삼겹살, 닭 가슴살, 양 갈비 등은 먼저 수비드로 살짝 또는 오랫동안 익힌 후 겉면을 바싹하게 구워낸다. 단면을 자르면 붉은색 살이지만 속에 육즙을 머금고 있는 상태로 분명 익은 것이다. 손님의 취향에 따라 템포를 조절해드린다.

수비드로 했을 때 가장 멋지게 변신하는 것은 양 갈비로, 특유의 향을 많이발산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잘 익어서 손님들이 갈빗대를 손으로 들고 마지막 부분까지 뜯어 드시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굉장히 즐거워하며 드시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다. 수비드로 익힌 육류 요리에는 스톡을 졸여 만든 주Jus 종류와 그에 어울리는 퓌레를 곁들이면 맛과 색채의 화려함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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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린 테이블의 대표 육류 메뉴 양갈비 source : 그루비주얼

이와 더불어 전통적인 브레이징 기법으로 만든 브레이징 램 섕크, 브레이징 오리 다리 등을 만드는 시간도 즐겁다. 육수나 소스를 한데 넣고 수비드 기계에 익히면 부드럽게 익힐 수 있지만, 브레이징한 음식만은 팬에 오랫동안 시어링한 후 오븐에 육수와 와인, 허브류를 함께 넣고 뚜껑을 닫아 2시간 이상 익히는 방식을 선호한다. 가끔 브레이징한 육류를 곁들인 파스타 종류를 메뉴에 넣을 때도 있다.

이외에도 감자로 만든 뇨키도 너무 좋아해서 메뉴에 꼭 넣고, 달걀이 듬뿍 들어간 프레시 파스타 종류인 카바텔리는 1년 내내 다양하게 애용하고 있다. 오랫동안 양파를 볶아 만든 양파 수프는 쇠고기 육수를 푹 고아 만들어 보양식처럼 느껴져 좋고, 또 조화를 잘 이룬 채소와 닭고기에 루Roux를 넣어 걸쭉하게 만들면 사랑스러운 포트 파이가 완성된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라타투이인데, 여름이면 항상 만드는 요리이다. 평범하기만 한 양파, 가지, 토마토, 피망 그리고 양송이 버섯이 육수를 만나고 타임의 향을 입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우아하게 변신하는 과정이 정말 환상적이다. 잘 만든 라타투이는 라면 수프의 느낌이 살짝 난다.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하는데 마법이 일어난 것만 같다.

과학적인 접근이 먼저 이루어지든, 후에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든 어떤 식으로든 셀 수도 없는 다양한 과정들이 요리 안에서 창조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내 온몸의 감각들에 의해 기록되고 있으니 이런 게 요리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About 김 은희

김 은희
저자 김은희 요리사는 손맛 뛰어난 어머니 밑에서 자연스럽게 요리의 참맛을 익혔으며 요리와는 무관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웹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03년 돌연 미국C.I.A로 요리 유학을 떠난 특이한 경력을 지녔다. 현재 그녀는 더 그린테이블의 요리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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