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혁명의 도구로 이용당했던 망고의 황당한 이야기

이것은 20세기에 발생한 가장 황당한 이야기 중 하나다. 중국 문화혁명이 격렬하게 진행될 당시의 이야기인데, 우리가 흔히 먹던 망고가 중국 전역에 정치적 선전물로 이용되는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 됐지만, 당시 망고는 지금의 절대시계 보다 훨씬 강력한 정치적 동기를 부여했다.

절대시계
안보에 도움을 준 국민에게 국정원이 주는 선물 – 일명 절대시계 source : namuwiki

1968년 중국은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2년 전부터 문화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던 마오쩌둥은 이 주도권을 홍위병이라 불리던 학생들에게 넘겨주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중국을 위해 기존의 전통을 전부 무시하라는 기본 이념을 전파하고 나서 공산당 내부에 일기 시작한 반대파를 숙청하기 시작했다.

그해 8월 오늘의 주인공 망고가 당시 파키스탄 외교부 장관의 방중과 함께 중국 땅에 들어왔다. 마오쩌둥은 한 바구니의 이 귀한 과일을 칭화대학의 공선대로 보낸다. 중국 최고 지도자이자, 위대한 혁명가였던 그가 직접 문화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학생에게 응원과 지지의 뜻을 담아 보낸 하사품이었다. 당시 칭화대 안에는 공산대원들이 두 파벌로 나뉘어 격렬한 점령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 폭력성은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편에 있는 학생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망고를 선물로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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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개에 불과하던 이 망고를 받은 공산 대원들은 선물을 받자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모든 노동자가 모 주석의 은총을 나누어 느끼도록” 결정했다. 그들은 마오쩌둥이 보낸 선물을 한곳에 모아놓고 열정적으로 소리치고 노래를 끊임없이 부르는 등 마오쩌둥을 찬양했다.

충성심을 넘어선 숭배의식은 곧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갔다. 베이징에서 가장 좋은 생산능력을 보유한 공장에서 약 1,400개의 망고 복제품이 만들어졌다. 신선한 망고가 왁스에 발라져 공장 한 쪽에 전시되어 있었고, 공장 노동자들은 망고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절을 할 정도였다. 또한, 망고가 서서히 썩기 시작하면 그 껍질을 벗겨 만든 대량의 수프를 성수라 부르며 마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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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인민일보>는 마오쩌둥이 공선대에 망고를 선물한 다음 날, 첫 면에 격정에 가득 찬 글을 실었다. “이것은 전체 노동자계급과 광대 공농병 군중에 대한 최대의 고무이고, 최대의 관심이며 최대의 교육이자 최대의 편달이다”

망고가 전역을 돌며 영혼을 정화(?)하는 동안 대중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던 인민이 받았을 고통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제한 망고가 사천 용안으로 갔을 때 한 치과의사는 유리박스 속에 들어 있는 망고를 보고 돌이킬 수 없는 한마디 말을 남겼다. “꼭 고구마처럼 생겼구나. 별로 볼 것도 없고 희한할 것도 없는데…” 그리고 1년 후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1976년 이후로 망고는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광풍을 몰고 다니던 망고의 여행은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나게 됐다. 우리가 흔히 먹던 망고 빙수 속의 그 망고가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숭배하던 그런 과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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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 본 콘텐츠는 Lucky Peach의 <China’s Revolutionary Fruit>의 이야기를 참고해 제작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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