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찾은 심야식당(시즌3), 권주성 셰프를 만나다.

“세비야에 오시면 절 볼 수 있으실 거예요. 스페인 세비야. 저는 50세 생일은 거기서 맞는 게 꿈입니다. 김밥 장사할건데요, 거기 가서 그 동네 할아버지들하고 김밥 싸가지고 와인 마실 거예요. 그러다 너무 더우면 오스트리아 어느 구석으로 가죠, 뭐.”

여름날 새벽, 인터뷰 녹음본을 다시 풀면서 천진(天眞)한 기분이었다. 새벽은 지나간 날이 들숨을 쉬고 새로운 날이 날숨을 뱉는 솔직한 시간이다. 숨길 이야기가 뭐 있냐는 이 셰프는 그런 천진한 새벽을 닮았다. 찌는 7월 마지막 주, 새롭게 오픈한 심야식당 시즌3 여의도점에서 권주성 셰프를 만났다.

 

| 요리사는 그의 다섯 번째 직업

“꽤 잘나가던 IT 회사를 그만둔 거 가지고, 어머니한테 욕을 10년을 먹었어요. (웃음)”

IT 업계 회사원, 요리 블로거, 영화 번역가, 사진작가. 권주성 셰프가 요리를 시작하기 전 경력 이야기다. 음식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그는 대학 때 안줏값이 없어 요리를 시작했다.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함께 술 마시려고 만들던 요리에 흥미가 붙었다.

“어느 날 4명인가 5명인가를 모셔놓고 다섯 코스를 하는데 중간에 엉켜버린 거예요. 달랑 한 테이블인데……. 그때 당시에 나이 사십쯤에 술장사해야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딱 꼬이고 나니까 쪽팔린 건 나중치고 ‘아, 시스템을 배워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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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1년을 이력서만 넣었다. 당시 나이 서른일곱. 네 번째 이력서를 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왔다. 성공적이었던 영화 번역 회사 대표를 맡고 있었던 그는 붙여만 주신다면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폐업하고 설거지하러 들어간 것이다.

“28일, 4주를 설거지만 하면서 살이 10키로가 빠졌어요. 그다음에 옮긴 식당에서는 한 달에 30만 원 받으면서 일했고요. 6개월 일하고 50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가 잘렸죠. (웃음) 그래도 요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한 적은 없어요. 너무 명확히, 딱 한 달 만에, 내가 알고 있던 요리지식이 진짜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MSG는 맛을 보면 구별해 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정말 제대로 뽑은 육수는 MSG를 쏟아 부은 맛과 같다는 것을 알고 나서 권주성 셰프는 그제야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손이 느린 요리사라 경력으로 커버해야 했다”면서 “경력이 쌓이니까 뭐부터 해야 될지가 보이더라. 그래도 아직 손은 느리다”는 이 솔직한 셰프는 배움의 시간일 뿐 후회한 적은 전혀 없었다 말했다.

“틀에 박히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메뉴를 계속 새롭게 바꾸는 이유도 그래서인 부분도 있어요. 같은 메뉴를 계속하면 요리가 아닌 장사가 될 거 같은 거예요. 재미가 없잖아요. 스스로한테 계속 일종의 안전장치를 거는 거죠. ‘지루하지 않다. 지루하지 않다.’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요.”

10년을 반대하셨던 어머니는 “네가 하는 일치고 제일 오래 하고 있다”며 작년부터 셰프 아들의 지지자가 되셨다.

 

| “퓨전 음식 아닙니다. 그냥 잡식입니다.”

“여행자의 목적지는 어떤 장소가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이 그 목적지이다.” 기행 문학의 걸작, 기행 산문의 정수라 불리는 「그리스 기행: 마루시의 거상The Colossus of Maroussi(Colt Press 1941)」을 쓴 소설가 헨리 밀러Henry Miller의 말이다. 권주성 셰프는 백여 개 이상의 도시를 여행했다고 말했다. 딱 백 개까지만 세고 여행지 세길 포기했다는 그의 요리에는 그 여행의 목적지들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어떤 장르의 요리를 하세요?’라고 물으면 ‘저는 잡식입니다’라고 답해요. 맛있으면 됐지, 음식 맛있으면 되지 장르가 중요하나요? (웃음) 세상에 새로운 건 없어요. 토마스 켈러Thomas Keller(프렌치 론드리 총주방장, 토머스 켈러 레스토랑 그룹 대표)도 사실 예전에 있던 수비드Sous Vide(밀폐된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물을 미지근한 물 속에 오랫동안 데우는 조리법)라는 조리법을 단순히 자신의 이름 걸고 정립한 거예요. 예전에도 있었던 요리법을 자기 이름 걸고 정립했을 뿐이지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란 거죠. 저도 사람이니까 창의력에 한계가 있어요. 다양한 시도를 함에 있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해요.”

다양한 시도를 하려면 먼저 스스로 틀을 깨부숴야 한다. 그에게는 그 방법이 여행이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또는 같은 레시피를 가지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요리하는 것을 보는 것, 그 음식을 맛보고 그 분위기를 느끼는 것, 그에게는 새로운 음식과 요리를 배우는 획기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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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제 나이에 비해서 8년 경력은 짧은 편인데도 사실……. 경력이 훨씬 많은 분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제가 그나마 셰프라는 소리 들으면서 요리를 할 수 있는 건, 조리법이든 재료든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는 거예요. 여행 다니면서 계속 새로운 음식들을 먹어보고 요리할 때도 다양한 재료들도 넣어보고,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건데도 먹어보면 괜찮아요. 그럼 팔면 되는 거고, 아니면 새로운 걸 하나 배우는 거고, 맛있으면 이래서 맛있구나, 맛이 없으면 아, 이래서 안 되는구나 하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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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의 모습 / 주방을 각 파트별로 나눠 화구가 세 개나 있다

그의 주방에서는 첫날 들어온 요리사들에게도 전체 레시피가 공개된다. 레시피는 의미 없는 보유 숫자일 뿐이다. 그 레시피를 얼마나 더 맛있게 발전시킬 수 있느냐, 나에게 맞는 레시피로 만들 수 있느냐에 요리사의 자존심이 달린다.

“오래 요리한 친구들은 자기만의 습관이 있어요, 근데 그게 꼭 좋단 법은 없거든요. 그 얘길 옆에서 얘기해주면 잔소리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시즌3 여의도점을 처음 오픈하고자 요리사들 모집했을 때도 신입들을 많이 들였어요. 그런 점에서는 장점이 되거든요. 면접 진행하면서 ‘나한테 배울 건 얼마 없을 거다. 내가 가지고 있는 레시피 얼마 없고 난 즉흥적으로 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대신 식재료에 대한 이해, 요리를 할 때 자세, 이 두 개는 확실히 배우고 갔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했어요.”

밑장 까기 3개월. 그의 주방에서 3개월은 소위 인턴 기간이다. “잘 보이려고 꾸미는 것도 2개월이면 지친다”는 그는 진실한 마음으로 음식을 대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간이라 했다. 이후 권주성 셰프는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요리사면 호텔 헤드 셰프급 연봉 액수까지도 인상을 제시한다. 자신이 덜 버는 한이 있더라도 꼭 하는 약속이란다.

 

| 홀과 주방 사이에 문턱이 필요할까?

디쉬(dish)에 마음이 동(動)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건드릴까 달아날까 꼭 잡고 있던 마음이 조그만 일에도 동요할 때, 그 순간을 감동(感動)이라 말한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한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그 감동의 순간은 어렵지 않게 찾아온다. 한 번의 눈인사와 한 마디의 짧은 말과 일류요리가 아닌 일류의 사람이 담기는 하나의 접시(dish)로.

“저예요. 단골손님들이 줄을 잇는 이유는, 너무 재수 없지만 저예요. (웃음) 이제까지 계속 주방에서 일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게 홀하고 주방 관계거든요. 홀 스텝하고 주방 스텝은 항상 대립각을 세워요. 보통 그래요. 파워게임이죠. 보통 주방 요리사들은 홀의 위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홀 직원들은 주방에다 홀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배가시켜서 던져요. 서로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성공하는데 말이에요. 100점짜리 요리를 만들어도 홀에서 50점짜리 응대를 하면 이 음식은 20점, 30점짜리가 되어 버려요. 심지어 50점짜리도 아니에요. 근데 주방에서 한 80점짜리 요리를 만들고 홀에서 100점짜리 응대를 하면, 이건 150점, 200점짜리 요리가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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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바라본 홀의 모습

권주성 셰프는 요리 퀄리티가 90% 이상 만족 되면 더 이상 주방에 집착하지 않고 홀로 나와 손님 응대에 나선다. 셰프가 직접 나와서 음식을 서빙하고 음식에 대해 전문적으로 설명하고, 새로 들어온 술을 주저 없이 시식용으로 따 버리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순간, 손님의 마음은 동(動)한다. 스스로 만드는 스타 셰프라며 웃는 그의 얘기에 힘이 실렸다.

“결과적으로 셰프라는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이 뭘까요. 유명해서 얼굴 도장 찍는 거보다 친근하게 받는 피드백이 먼저 아닐까요. 가공이 아니라 팩트(fact)를 받는 거. 한 다리 거치면 항상 거친 다리들의 의견이 더해져 버려요. 나아가서 그러한 진솔한 관계와 피드백이 셰프의 몸값을 올리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고도 생각하고요. 유명하다는 개념보다는 손님이 먹고 싶게 만드는 게 저에게는 우선이에요.”

먹고 나서 비싸다보다 이 가격에 잘 먹었다고 생각되는 요리들만 내놓는다는 심야식당의 음식과 술은 원가와 지출비용을 합치면 가격의 40~50%에 달한다. 맛있는 요리, 다음에 또 맛보고 싶은 요리, 거기에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심야식당 그 분위기 전체를 파는 것, 단골손님들은 주저 없이 심야식당의 PR맨을 자처한다.

 

| 요리사가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을 꿈꾸다

주말이나 저녁 퇴근 시간이 지나면 여의도 상권은 생기를 잃는다. 시즌3의 오픈이 왜 하필 여의도에서 이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권주성 셰프는 대뜸 ‘사회주의적 프렌차이즈’라는 새로운 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적 프렌차이즈 기업, 그니까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라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한 번 해보려고요. (웃음)”

한국인 수명 100세 시대에 40대 중반이면 명예퇴직을 걱정하고 50대 초반이면 눈칫밥을 먹는다. 치킨집, 커피 프렌차이즈, 편의점이 한 블록마다 하나씩 들어서 있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명예퇴직자들을 자생시킬 수 있는 음식 산업을 해보고 싶다는 권주성 셰프는 그 테스트 키친으로 여의도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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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주말에 손님이 오게 만들어 보자는 게 제 목표에요. 이게 성공하면 전국 어디에 업장을 내도 밥은 안 굶겠다라고 생각한 거죠. 여기 여의도점 오픈할 때도 한 명 빼놓고는 다 초짜예요, 지금. 이쪽 업을 처음 하는 사람들 위주로 뽑아놓은 거예요. 이 사람들이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할지를 계속 보는 거예요.”

여의도를 테스트 키친으로 내후년 정도에 이 명예퇴직자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 거라는 그는 또래 대학, 사회 동기들과 선후배들의 걱정이 와 닿았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스스로 살 길을 만들어 주고자 했던 고민의 결과인 것이다.

“한국에서 잘 안 되고 있는 게 있잖아요. 돈 많이 버는 사람은 적게 내고 서민들은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제가 가맹점을 했을 때는 많이 버는 사람한테는 그만큼 조금 더 받고 못 버는 사람한테는 조금 더 많이 투자를 하려고요. 사회주의적 기업이라고 얘기한 게 이 때문이에요. 그게 제 다음 목표에요. 그것까지 해놓은 다음에는 한국을 뜨려구요. (웃음)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대우받으면서 일하고 싶은 곳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고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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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술을 잘 사나 봐요. (웃음) 제가 사실 그렇게 막 부드러운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굉장히 까칠해요, 일할 때는 더 그렇고. 이왕이면 완벽하려고 하는 편이라 까칠해지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손님들이나 셰프님들이 저를 찾아주시고 심야식당으로 모이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 그런지는.”

그만 모르는 이유다. 셰프를 닮은 천진난만한 그 접시에 홀리지 않을 이 누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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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감자전 – 심야식당 시즌 3 밥상 & 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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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탕 – 심야식당 시즌 3 밥상 & 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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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삼겹 구이 – 심야식당 시즌 3 밥상 & 술상
  • 심야식당 시즌3 밥상 & 술상(페이스북 페이지) /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42 상가건물 2층 / 02-780-1515

About 박 선영

박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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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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