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본의 맛 #5]밥상의 주인공에 대한 대접이 밥맛을 결정한다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지난 10년 동안 틈만 나면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해협을 건너는 배에서 일본 관련 책과 자료를 읽었고, 주로 두 다리로 규슈를 샅샅이 훑었다. 어쩌면 ‘한일 해협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기네스북 등재도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의 여정이다.  우리가 일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 음식들은 언제부터 일본음식이었을까?

Editor’s note : 다섯 번에 걸쳐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의 원문을 소개할 예정이다. 저자 박상현 맛 칼럼리스트와 따비 출판사의 동의 아래 축약된 내용을 전달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본 음식이 어떻게 한국에 정착했고, 일본인은 서양식을 어떻게 일본 음식으로 정착시켰는지 저자의 10년간의 활동과 취재를 들춰보자.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음식은 뭐냐?”

취재를 위해 두 달 정도 규슈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나름 입맛 까다로운 인간이 일본을 60일씩이나, 그것도 음식 취재를 위해 다녔다고 하니 다들 이런 질문 한 번씩은 던졌다. 질문에 ‘가장’이라는 부사가 수식어로 붙었다는 것은 묻는 사람의 기대치가 반영되어 있다는 의미다.

2개월 동안 먹어 치웠던 수많은 음식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그래서 지금도 수시로 생각나는 음식은 ‘밥’이다. 음식 좀 아는 체 폼 잡으려고, 혹은 대단히 형이상학적인 기준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가 아니다. 정말로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하얀 쌀밥이다. 아마도 일본 좀 다녀 본 분이라면 대부분 동의하실 거다.

일본의 밥이 맛있다는 사실이야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길어야 일주일 정도에 불과한 단기여행이었기에 맛있는 집만 엄선해서 다녔고, 그러니 밥이 맛있는 거야 당연하다 여겼다. 하지만 일상적인 혹은 대중적인 수준에서까지 그러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한국인의 입장에서 솔직히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저희나 우리나 밥이 밥상의 중심인데, 이 밥에서 밀린다는 것은 크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밥맛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커피 사업을 하는 분께 좋은 커피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다. 그분 왈, “밥이랑 똑같이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좋은 밥을 위해서는 우선 쌀이 좋아야 하고, 다음으로 물이 좋아야 한다. 이 둘이 핵심변수고 밥 짓는 솜씨나 도구 등은 종속변수라는 소리다.

지금의 기준에서 일본이나 우리나 밥 짓는 도구나 솜씨는 거의 차이가 없다. 한때 ‘코끼리밥솥 조지루시)’이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좀 사는 집이라면 반드시 하나쯤 갖고 있고, 혼수품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그런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쿠쿠나 쿠첸 쓰지 코끼리밥솥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만큼 한국의 기술력이 향상됐다. 가마솥, 압력솥, 돌솥 등도 밀리지 않는다. 물? 확실히 일본이 우리보다 수량이 풍부하고 ‘일본 100대 명수’ 등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모든 가정이나 음식점에서 이런 물로 밥을 짓는 것은 아니다.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상수도의 수질이나 정수기의 기능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마지막으로 남는 변수는 쌀이다. 그런데 이 쌀의 품질이라는 것이 단순 비교나 섣부른 단정으로 알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 일본 밥이 한국 밥보다 맛있는 결정적인 이유가 쌀일 것이라는 가정에는 도달했지만, 아쉽게도 이를 검증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다. 워낙 복잡하고 미묘한 사안이기 때문에 선무당이 덤빌 일은 아니다. 결국 한국과 일본의 밥맛이 왜 다른지 속 시원히 규명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의문을 가지고 자세히 살피니 보다 본질적인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밥을 대하는 일본인의 자세다.

우선 일본인은 밥이 밥상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좀 이름난 음식점들은 자신이 쓰는 쌀을 누가 어떻게 재배했는지를 지겨울 정도로 강조한다. 쌀의 품종, 재배 지역, 브랜드를 표기하는 것은 이미 일반적이다. 계약재배를 하는 경우도 흔하고, 쌀을 재배하는 지역의 물을 길어다 밥을 짓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쌀을 도정한 후 밥을 짓기까지의 시간은 밥맛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쌀을 도정하면 몇 시간 후부터 수분이 증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약 보름 후부터는 지방 성질에 변화가 생겨 산화하며 부패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산패라 한다. 또한 습도가 낮은 곳에서 오래 보관하면 쌀이 깨진다. 산패하고 깨진 쌀로 밥을 지으면 질고 냄새나는 밥이 된다. 도정 후의 기간이 길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쌀의 유통 기간이 짧고, 포장 또한 1~2킬로그램 단위를 선호한다(한국은 5~10킬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음식점의 경우 도정기를 갖추고 직접 도정을 하는 곳도 더러 있고, 심지어는 그날 쓸 쌀을 당일 오전에 도정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아무리 허술한 대중식당이라도 밥을 미리 담아 두는 경우는 없다. 언제나 주문과 동시에 밥솥에서 담아낸다. 그래서 된장국이나 반찬을 담는 그릇에는 뚜껑이 있는 경우가 흔하지만 밥그릇에는 절대로 뚜껑이 없다.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꾹꾹 눌러 담고 뚜껑을 덮어 보관하는 습관만 개선해도, 우리 대중음식점의 밥맛은 훨씬 더 나아질 수 있다.

백반 사본
뚜껑이 덮인 스테인레스 그릇의 밥은 제 맛을 낼 수가 없다. source : tpholic.com

| 밥상의 주인공에 대한 올바른 대접

일본인이 즐겨 먹는 모든 대중음식은 밥반찬으로 수렴된다. 쓰케모노나 된장국, 생선구이 등 전통적인 반찬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그들에게는 사시미(회)나 만두도 밥반찬이다. 서양음식이 일본에 정착하는 과정에서도 그 첫 번째 조건은 밥반찬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햄버거스테이크도, 덴푸라도, 돈카쓰도, 고로케도, 그리고 카레나 스튜도 밥반찬이 되고 말았다. 이탈리아 사람은 환장하겠지만 때로는 스파게티도 밥반찬으로 쓰인다. 그래서 무슨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든 밥이 기본일 수밖에 없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묵은 밥은 사용하지 않는다. 덮밥을 만들 때도, 주먹밥을 만들 때도, 카레라이스를 만들 때도, 그리고 볶음밥을 만들 때조차도, 갓 지어 윤기가 반질반질하고 한 알 한 알 고슬고슬한 밥을 사용한다.

결정적으로 일본인은 밥을 대접할 줄 안다. 밥그릇은 가장 중요한 식기다. 어느 음식점을 가든 개성 넘치는 밥그릇의 향연이 펼쳐진다. 손으로 쥐고 입 가까이 가져가 밥을 먹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그릇의 모양과 무게감 또한 세밀하게 살핀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멜라민 밥그릇은 상상할 수 없다. 아무리 허술한 식당이라도 밥그릇은 무조건 도자기다.

심지어 멜라민 식기를 사용하는 단체급식에서조차 밥그릇만큼은 도자기를 사용한다. 그래서 일본의 밥은 행복해 보인다.

밥을 대하는 자세가 이렇듯 섬세하고 반듯하니 밥이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본인은 밥을 많이 먹는다. 비단 일본인뿐 아니라 나 같은 여행객조차 일본에서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밥을 먹게 된다. 밥 자체가 맛있으니 쓰케모노 하나만으로도 밥 한 그릇이 그냥 비워지고, 밥 자체가 맛있으니 모든 밥상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먹는 스시, 오니기리, 돈부리, 오차즈케 등이 맛있는 것 또한 기본이랄 수 있는 밥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에 사용되는 밥조차 사람을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할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연장이나 도구를 탓하는 것은 얼치기의 몫이다. 쌀이 좋으니, 물이 다르니, 밥솥이 차이 나니 하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음식은 결국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밥맛의 차이는 결국 밥을 대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우리 밥상의 진정한 주인인 밥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일본에게 ‘밥맛’으로 꿀리는 거 자존심 상하지 않으신가? 축구나 야구 등의 한일전에서만 흥분할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먹는 ‘밥맛’에서부터 자존심을 좀 챙겼으면 한다.

About 박 상현

박 상현
지난 10년 동안 틈만 나면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해협을 건너는 배에서 일본 관련 책과 자료를 읽었고, 주로 두 다리로 규슈를 샅샅이 훑었다. 어쩌면 ‘한일 해협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기네스북 등재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 음식들은 언제부터 일본음식이었을까?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