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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국수에서 숨은 욕망을 읽어 내죠

‘먹방’이 대세다. 먹방은 ‘음식 먹는 방송’을 말하는 신조어다. 무언가를 먹으면서 신나게 떠드는 프로그램이다. 스튜디오를 식당 분위기로 꾸며 놓고 연예인들이 나와 음식 솜씨를 자랑하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시골집에 내려가 할머니 밥상을 받아 놓고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한다. 나오는 음식은 모두가 맛있어 보이고 나오는 인물은 너도나도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다. 그러나 정작 먹방을 보는 사람들은 심히 고통스럽다. 젓가락을 들고 TV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니 꼴깍꼴깍 침만 삼키며 참고 또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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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먹방에 최근 정점을 찍은 프로그램이 있다. 지난 3월 26·27·28일 3일간 밤 10시에 KBS 1TV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요리인류’다. 파리 중심가 베이커리에 진열된 미니 딸기 케이크, 사하라사막 잿더미 속에서 끄집어낸 발효 빵 등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구촌 방방곡곡의 맛난 요리가 줄을 잇는다. 단순히 접시에 담긴 음식만 나오는 게 아니다. 재료 하나를 벗기고 자르고 찌고 굽는 과정을 고화질 영상으로 보여준다. ‘눈으로 먹는 맛의 신세계’가 제대로 펼쳐진 것이다. ‘방송 내내 맛있겠다, 맛있겠다는 옹알거림이 계속됐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냉장고를 향해 KTX의 속도로 달려갔다’, ‘군침 삼킬 겨를조차 없는 완벽 먹방이었다’ 등 시청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요리인류’. 이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셰프 피디’로 불리는 이욱정 PD다.

“인류가 지구에 생존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화두는 먹을거리 아니었을까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발굴하고 그에 따른 수많은 조리법이 나왔겠지요. 그런데 아주 일부 음식과 조리법만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어요. 그 힘이 무엇일까요.” ‘요리인류’를 만들려고 한 발상이 자못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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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욕망을 읽는 거죠. 그걸 못하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지만, 그 흐름을 파악하고 따른다면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수천수만 년 동안 인류의 삶을 이끌게 되는 것이죠. 빵이나 국수처럼 말이죠.” 결국 요리와 음식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변했고 뭘 원하고 있고 그래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다분히 철학적이다. 그런데 요리라는 주제가 철학적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다. 요리의 본질은 차곡차곡 머리에 쌓이는 인문학적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PD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요리는 입을 통해 뱃속에 들어가 에너지원이나 영양분으로 쓰이면 제 본분을 다하는 거죠. 그런데 방송 프로의 요리는 영상과 소리로 ‘약만 올리다’ 끝날 수 있으니 다큐멘터리 제작이 쉽지 않지요. 게다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브라질의 아마존처럼 무게감이 있는 주제도 아니고요. 다큐멘터리의 중량감을 더해 풀어가자니 부담이 무척 컸습니다.”

| 미국 유학 준비하다 우연히 PD가 돼

이 PD의 대표작은 2008년 KBS에서 방영한 6부작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아시아-누들로드’다. 아시아의 면(국수)이 대륙과 문화권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바꿔 가는 과정을 담아 다큐멘터리의 퓰리처상이라고 불리는 피버디상까지 받은 작품이다. 그런 그가 2010년 갑자기 휴직하고 홀로 짐을 꾸려 영국으로 요리 유학을 떠난다. 그것도 ‘요리 학교의 하버드대’라고 불리는 ‘르 코르동 블루(런던 캠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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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유학을 다녀온 뒤론 요리사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존경의 눈높이로 올라갔다고나 할까. 제대로 만든 음식을 식탁에 내놓는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음식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PD가 요리 한 번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내내 불편했어요. 야구 전문 PD가 야구를 한 번도 해보지 않고 야구 전문 PD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음식 피디라면 직접 요리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우여곡절도 많았다. 첫 수업부터 칼이 든 가방을 연다고 끙끙거리다가 ‘얼간이 클럽’의 멤버가 돼버렸고 조리 실습 땐 시간을 못 맞춰 허둥대기 일쑤였다. 그래도 당당히 고급 과정까지 수료하고 1년 만에 귀국했다. 그의 별칭이 ‘셰프 피디’인 까닭이다. ‘카메라를 아는 PD’에서 ‘프로급 요리를 하는 PD’로 변신해 요리 기획물을 내놓으니 고위층에선 믿고 맡길 수밖에 없었을 게다.

이 PD의 대학 전공은 영문학이다.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인류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때부터 음식에 대한 끼를 발휘한다. 먼저 석사 논문의 주제가 ‘음식의 금기’다. 방송국에는 우연히 발을 담그게 된다. 미국 대학 인류학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전 시험 삼아 지원해 본 게 합격한 것이다. 방송국 PD로 주저앉았다.

“‘추적 60분’ 프로그램도 해봤어요. 주로 음식과 식품 쪽을 다뤘지요. 그런데 고발하는 프로그램은 저와 맞지 않더라고요. 누굴 단죄하고 그러는 게 힘들었어요. ‘먹거리 X-파일’같은 프로는 앞으로도 못할 것 같아요.”

현재 자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 큰 기둥이 된 것은 대학원에서의 인류학 공부와 르 코르동 블루의 요리 공부다. 음식을 통해 사회와 역사를 풀어보는 눈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요리 유학을 다녀온 뒤론 요리사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존경의 눈높이로 올라갔다고나 할까. 제대로 만든 음식을 식탁에 내놓는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그는 요리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셰프 피디’라고 불리는 게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셰프는 주방의 리더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리더급 요리사가 아니거든요. 그냥 요리를 하는 피디 정도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지만 이 PD는 요리나 음식에 관한 한 전문가 레벨의 환경에서 컸다. 아버지는 식신(食神)급, 어머니는 대장금(大長今)급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만주통, 어머니는 일본통이다. 국제적 미식 감각까지 갖춘 부모 밑에서 입과 눈과 코와 귀를 키워 온 것이다.

“아버지 고향이 평안도 진남포인데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냉면을 많이 먹었어요. 만주에서 오래 지내셔서 중국 요리도 즐겨 드셨지요. 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다니셨어요. 요리하는 걸 무척 좋아하시는데 솜씨도 수준급이세요. 두 분 덕분에 자연스럽게 먹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됐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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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 끝내고 숙소서 컵라면 먹어

‘요리인류’를 제작하느라 2년 동안 45개국이나 돌아다녔다. 게다가 방송에 온갖 요리가 등장하는 걸 보니 입 호강깨나 했겠다. 그런데 전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영상은 순간의 미학입니다. CF처럼 찍을 수도 없는 상황이죠. 그러다 보니 매번 긴장의 연속입니다. 로마의 레스토랑에서 1인당 500유로 하는 메뉴를 3시간 동안 땀을 줄줄 흘리며 찍은 적이 있어요. 촬영이 끝나고 포크를 들이댔더니 음식이 식고 퍼져 맛조차 가늠하기 어렵더라고요. 제작진과 함께 숙소에 돌아와 컵라면을 끓여 먹었답니다.”

요리를 배우고 요리를 찍고 그렇게 하면서 좋아진 요리가 있는지 물었다. “피자”란 답이 바로 나왔다.

“지금은 흔하디흔한 미국 피자 브랜드 1호점이 겨우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가 ‘이탈리아식 파전’라고 하며 처음 만들어 줬던 메뉴지요. ‘엄마표’ 1등 메뉴로 기억하고 있는데다 공부하고 촬영하면서 여러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나눔의 음식’이란 걸 깨달았어요.”

 

원문 보기 : http://cafe.naver.com/ufoodstation/1534

About 유 지상

유 지상
전 중앙일보 맛집 전문기자 유지상 음식칼럼니스트 "밥맛나는 세상만들기의 최전선에서 고분분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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