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펀지 짤방으로 얼굴 알린 소믈리에, 요리사 되다 – 반피차이 허혁구 오너셰프

서울 강남 빌딩 숲 외곽에는 아직도 재래시장의 모습을 제법 유지하고 있는 영동시장이 있다. 그리고 시장 한켠, 국밥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왠 태국음식점이 있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문턱 낮은 식당. 그렇지만 고급 와인과 태국 본토 향이 살아 있는 푸팟퐁 커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덕분에 들렸던 손님마다 지인을 데리고 다시 식당 문을 열고 있다. 식당 주인인 허혁구 셰프가 운영하는 반피차이가 그 태국음식점이다.

| 신세계, 구세계 논하던 소믈리에가 태국음식을 만들다

혹시 예전 방송 ‘스펀지’에 출연해서 구세계, 신세계 와인 맛이라 말하던 소믈리에를 기억하는지? 방사능을 쬔 와인 맛에 대해 당시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관능 평가로 네티즌들의 비웃음을 샀던 사람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misaengdlib3

조심스럽게 사건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 “연예인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닌데 굴욕이랄 것도 없어요. 사진 맘대로 사용하셔도 돼요. 지난 일인데요 뭐. 하하” 의외다. 여기에 한술 더 뜬다. “이제 런닝맨에도 나오고 했는데, 스펀지 사진은 별로 효과 없을 걸요.”

원래 소믈리에들은 전부 비슷하게 관능평가를 하는지 궁금했다. “저만 그럴걸요. 저는 약간 음식과 술 등을 형용하는 것을 좋아해요. 예를 들면, 대리석을 딱딱한 우유라고 표현하는 정도가 되겠네요.”

허혁구 셰프는 요즘에서야 셰프로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최연소 소믈리에로 더 유명했다. 그는 미국 리퀴르 아카데미(주류 전문학교)를 졸업한 주류 전문가이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와인 담당으로 일하던 중 현지에서 맛본 태국 음식이 10년간의 소믈리에 생활을 접게 만들었다. 지금은 태국 음식을 요리한다.

DSC04146

“대기업에서 와인 물류업을 맡아서 일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졌던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바이어가 아닌 만드는 사람이 돼보자는 생각에 요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와인 전문가로 입사는 했지만, 단순 구매나 물류관리와 관련된 일을 주로 맡게 됐다. 창의력이나 생산적인 능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그는 2010년 즈음부터 월차를 써가며 태국을 오갔다. 이전에도 태국을 다녀왔던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요리사로서의 그림을 그린 것은 이맘때였다고 한다.

그리고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2013년 11월 반피차이를 열기 전까지 태국에서 2년간 살면서 태국 각 지방과 동남아 주변 국가를 다니면서 수 백 가지 음식을 맛봤다.

많은 음식을 먹어 본 요리사를 이길 방법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소믈리에로 활동할 당시에 훈련했던 향과 맛을 기억해야 하는 능력은 요리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요리사이기 전에 10년간 현장에서 닳고 닳은 소믈리에이었다. 빈티지, 국가, 품종마다 향이 전부 다른 와인의 특성상 ‘손님에게 맞는 최상의 와인이 무엇일까?’를 늘 고민하는 버릇이 몸에 배었으리라. 이전에 갈고 닦은 향을 기억하는 능력은 태국 지방마다 다른 맛과 향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개인적으로 향을 잘 기억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태국에서 지내는 동안 음식을 먹으면 사용된 식재료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어요.” 그의 잘 다듬어진 후각은 태국 본토의 향을 반피차이만의 맛으로 승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DSC04124

| 태국 음식의 향과 깊이에 빠지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태국음식점이 골목 어귀마다 영업할 정도로 성황이다. 하지만 허혁구 셰프가 맘에 들어 하는 식당은 손에 꼽을 정도. “재료를 무성의하게 사용하거나, 향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현지의 맛대로 표현하는 곳이 없다는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결정한 태국음식점 경영.

사랑하는 태국음식을 직접 만들어 보자는 결심 이후 본격적인 미식탐험을 시작했다. 2년간의 태국생활은 거주자나 여행객이 아닌 탐험가로 지냈다. 수도 방콕을 거점으로 사방으로 오직 먹으러만 다녔다. “태국에는 아시아 음식뿐만 아니라 프렌치, 이탈리안, 스페니쉬 다 있거든요. 가격이 저렴해서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약 10년 간의 사회생활 동안 모은 돈을 전부 탐험에 투자했다.

그가 2년간 경험했던 태국의 음식은 어땠을까? 각 지역별로 다른 음식문화를 설명했다. 그가 가장 오랫동안 지냈었던 북부지방 즉, 치앙마이 지역은 깐똑이라는 우리의 한상차림과 비슷한 음식문화가 있다고 한다. 란나 왕국의 궁중요리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형태이다. 발효식품이 많으며 특유의 향신료를 사용한다.

태국_주요_지도_도시_위치1

동북부 이산 지방은 간이 쎄기로 유명하다. 피쉬소스를 잘 쓰기로 유명하며 우리의 음식문화와 비슷한 구이 음식도 많이 있다.

푸껫으로 대변되는 남부 지방은 말레이시아 지역민과 중국 화교의 영향으로 복합적인 음식이 대세이며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으로 카레도 발달했다고.

반피차이는 60가지의 메뉴를 고집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60가지의 메뉴를 유지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닙니다” 스스로 말하는 허혁구 셰프. 그가 경험한 태국 지방마다의 고유한 맛을 다 담고 싶다고 했다. 또 너무 대중적인 음식, 예를 들어 ‘팟타이’ 같은 메뉴가 태국음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도 싶다고 했다. 경영에 어려움이 있어도 다양한 메뉴를 고집하는 이유다.

| 본격 허혁구식 태국음식의 발전

주방이 의외로 좁다. 3명의 직원이 나란히 서면 꽉 찬다. 비좁은 곳에서 60개의 메뉴와 10개 정도의 테이블을 2회전 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따로 하루 음식을 준비해서 저장하는 공간 외에는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주방이 전부이다.

DSC04111

음식점을 차리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우선 직원 구하기가 어려웠다. 제대로 된 태국음식을 만들고 싶었는데, 태국음식을 이해하고 있는 요리사가 당시에는 적었다. 아니면 태국음식을 했다고 해서 채용하면 잘못된 지식으로 요리 고집을 부려 고생하기도 했다. “오히려 태국음식을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요리사에게 처음부터 알려주는 방법이 더 편하더라고요. 지금은 모든 직원이 비슷한 정도의 음식 이해도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맛을 내기 위한 식재료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찾는 것도 힘들었고, 4계절 공급받기는 더욱 어려웠다. 지금은 전라도 지방의 농장과 계약 재배를 해 냉동이 아닌 신선한 상태의 재료를 받고 있다.

그가 원하는 태국음식. 적어도 같은 양념을 쓰면서 식재료 몇 가지만 바꿔놓고 신메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주재료를 바꾸면 메뉴에 따라 양념도 계속 바꾸면서 맛을 발전시키고 싶었어요. 퓨전이라고 부르기보다는 하이브리드. 정통의 음식도 지금까지 조금씩 바뀌면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리가 진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최근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에 작은 규모의 반피차이가 입점했다. 미식가들의 입소문과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만 입점할 수 있다고 정평이 난 강남점이다. 점장으로 같이 일할 요리사도 1년 2개월 동안 반피차이 본점에서 동고동락하며 태국 음식을 배운 요리사이다.

요리사라면 칼질이나 웍을 잘 돌리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허혁구 셰프. 그의 태국 음식 향내음이 서울 전역에 퍼지고 있다.


DSC04138

About 이 인규

이 인규
'미식에는 층위가 없다. 단지 아직 느끼지 못한 음식이 있을 뿐.' 이래 생각합니다. 비록 글로 배운 음식문화이지만, 혀로 배우고 사색하기 시작하면서 그 한계를 넘고자 합니다. 나에게 있어 한계는 맛을 표현하는 글인게죠.

963 comments

  1. 오우 느끼해…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