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전성시대가 반가운 이유

 

나는 언제부터인가 TV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있다. 야근이 잦은 탓일 수도 있겠지만, 프로그램 하나를 온전히 볼 진득함이 없다는 게 결정적 이유다. ‘핸드폰이나 컴퓨터에는 더 짧은 시간 안에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데 굳이?’라는 생각이다. TV 앞에 앉아 한 시간 이상씩 게다가 중간중간 광고가 섞인 프로그램을 봐줄 아량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요리 방송 프로그램 일명 ‘쿡방’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사가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유명 요리사를 손가락으로 뚝딱 불러낼 수 있는 요즘 같은 편성대로라면 티비 볼맛이 더 나겠다.

리모콘 터치 몇 번에 유명 셰프를 볼 수 있는 요즘. 동시에 요리사가 TV에 너무 많이 나온다고 우려하는 진단형 기사들도 본 기억이 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나, 문화를 평론하는 이들이 셰프의 잦은 외도를 대신 걱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러다 식당 일에 소홀한 건 아닐까?’ ‘잘생긴 외모만 강조하는 건 아닐까?’ ‘시장을 왜곡하지는 않을까?’ 등등.

외식 미디어 일원으로서 그냥 넘겨 버리기에는 마음속에 탁하고 걸리는 뭔지 모를 부분이 있었다. 해서 감히 내 주관을 써보기로 했다. 짧은 식견을 무릅쓰고.

| 우리 역사를 통틀어 직업의 위상이 뒤바뀐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

현재 우리나라의 외식업 종사자는 300만 명에 달한다.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사람까지 합한다면 더 많을 것이다. 그중 진짜로 요리만을 업으로 삼는 주방사람은 190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숫자로는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직업군이다. (2014 농림축산식품부 통계) 그러나 이들의 근로 조건은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법대로 하루 8시간을 지키고, 최저임금 5,580원 이상 받고, 4대 보험의 보호 아래 놓인 인원이 이 중 얼마나 될는지… 한마디로 천한 직업이다.

지금은 제일 우수한 수험생들이 몰린다는 의과대학. 의사라는 직업도 과거에는 천하게 여겨지던 직업 중의 하나였단다. 대한제국 시절 국내 최초의 근대식 의사로 양성된 김교준 선생의 회고(관련기사)에도 자신의 의대 진학 선택이 주변 사람들의 빈축을 샀었다는 내용이 있다. ‘지역 유지의 아들이 왜 의사가 되려 하느냐’하는 질책이었다.

연예인은 어떤가? 아이돌은 현재 청소년들에게 선망의 직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게다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국가가 관리하고 융성해야 할 신(新)산업으로 분류된 지 오래고, K-pop이라는 신조어도 그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불리기 시작했다. 현재 대입을 위한 실용음악학원만 1100개에 달한다는 기사도 있다. 불과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딴따라’라 불리던 천한 직업이 이제는 부모들이 발벗고 나서서 조기교육을 시킬 정도의 레드오션 직업이 된 것이다. (관련기사)

하지만 요리사는 아직도 천한 직업으로 여겨진다. 2010년부터 불어닥친 요리 서바이벌 티비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쿡방은 이제 예능계를 정복하고 있다. 그나마 요리 프로그램 덕분에 요리사 이미지가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됐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들 요리사의 근로조건과 사회적 대우가 눈에 띄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아직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우리 외식문화는 질적인 전진과 후퇴가 반복됐다. 다른 산업은 몰라도 외식산업에는 정치와 거대 자본의 논리가 우선 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요리사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그래서 주어지는 대로 임금을 받고, 정해진 식재료 값과 건물 임대료에 조건을 맞추다 보니 지금의 웃지 못할 상황에 이른 것이다. TV에서 요리사가 백날 나와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고 말하는 것도 상황개선에 요리사가 직접 개입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이제는 요리사가 개입할 여지가 필요하다.

틈을 만들고 “우리가 이렇게 어렵게 일해왔다. 더 나은 환경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스타 셰프가 절실한 순간이다. 산업을 질적으로 성장시키고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고 싶은 요리사라면 스타 셰프에게 질타가 아닌 차라리 응원이 낫겠다.

이미 스타셰프의 반열에 올라선 선배 요리사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적어도 자신의 인기를 자신만의 것으로 가둬두어서는 안 된다. 문제를 들춰내고 개선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해야 한다. 노조를 만들든지, 직급에 맞는 표준 임금 기준을 선제시하든지. 스타 셰프의 대중 인지도를 빌리면 역사에 남을 굵직한 행보가 가능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한국 영화인들이 결과적으로 스크린 쿼터제를 지켜냈듯이 말이다.

어쩌면 지금이 요리사라는 직업의 귀천이 역전될 수 있는 골든타임일 수 있다. 그렇기에 셰프의 미디어 외도는 더욱 간절하다.

About 이 인규

이 인규

‘미식에는 층위가 없다. 단지 아직 느끼지 못한 음식이 있을 뿐.’ 이래 생각합니다.
비록 글로 배운 음식문화이지만, 혀로 배우고 사색하기 시작하면서 그 한계를 넘고자 합니다.
나에게 있어 한계는 맛을 표현하는 글인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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