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뎅, 한국에선 재료지만 일본에선 음식이다.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지난 10년 동안 틈만 나면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해협을 건너는 배에서 일본 관련 책과 자료를 읽었고, 주로 두 다리로 규슈를 샅샅이 훑었다. 어쩌면 ‘한일 해협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기네스북 등재도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의 여정이다.  우리가 일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 음식들은 언제부터 일본음식이었을까?

Editor’s note : 다섯 번에 걸쳐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의 원문을 소개할 예정이다. 저자 박상현 맛 칼럼리스트와 따비 출판사의 동의 아래 축약된 내용을 전달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본 음식이 어떻게 한국에 정착했고, 일본인은 서양식을 어떻게 일본 음식으로 정착시켰는지 저자의 10년간의 활동과 취재를 들춰보자.


우리는 오뎅おでん이 일본말이기 때문에 어묵으로 순화해서 써야 한다고 배웠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어묵은 으깬 생선살을 익혀서 만든 가공식품이고 오뎅은 이를 이용해 만든 탕 또는 전골로 알고 있다. , 한국에서 살자면 이 정도 지식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일본의 오뎅집을 가면 십중팔구 다음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오뎅 냄비에 든 것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주문한다. 그가 받은 오뎅 접시에는 원했던 오뎅이 다양하게 담겨 있기는 한데 대체 뭘 먹었는지를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러니 일본에서 오뎅 맛있게 먹었다는 사람을 좀처럼 만날 수 없고, 오히려 일본 오뎅은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한번 따져 보자.

| 가마보코에서 어묵까지, 한국의 오뎅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과 함께 부산항은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인에게 개방됐다. 이때부터 부산을 대륙 침략과 식민지배의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많은 일본인이 몰려왔다. 사람의 이동은 생활방식의 전파를 수반하게 마련이고 특히 음식은 가장 우선적인 대상이다. 따라서 어묵은 일본인이 대거 부산항에 상륙하던 때와 거의 동시에 전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어묵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부산항이 개항되고 40년쯤 후에 등장한다. 부산시 중구 부평동의 부평시장1910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공설시장이자 근대식 시장이다. 대지 1,176평 건평 311평의 목조건물에 실내 125, 실외 137개의 점포가 있었다. 1915년 기록된 《부평시장월보》에 따르면, 어묵 가게도 세 곳이나 있었다. 비율로 봤을 때 이미 당시부터 상당히 대중적인 음식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부평시장월보》에서는 어묵을 가마보코蒲-g’로 표기하고 있다. 가마보코는 으깬 생선살에 조미료를 더해 찌거나 구운 음식의 총칭이기도 하고, 나무판 위에 반달 모양으로 성형해 찌거나 구운 특정 어묵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우동, 라면, 잔폰의 고명으로 주로 사용되고, 특히 새해에 먹는 떡국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재료다.
부산항 개항 직후는 물론 그 후로도 아주 오랜 기간동안 어묵은 가마보코라는 일본어 그대로 한국에서 사용되었다오뎅이 가마보코를 대체하게 된 것은 시대적 상황과 언어적 특성에 기인한다.
1930~40년대 신문 기사나 소설에는 오뎅이라는 음식이 더러 등장한다. 당시만 해도 일본요릿집 혹은 요정에서나 먹을 수 있는 고급음식이었다. 서민들로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식임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오뎅은 가마보코보다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쉬웠다. 이런 이유로 오뎅에 대중의 욕망과 편의성이 투영되었다.

한편에서는 가마보코도 오뎅도 아닌 우리식 명칭을 찾는 노력이 이어졌다. 식품위생법상의 표기 때문이다. 신성한 법률 용어에 일본어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기떡, 생선묵 등을 거쳐 1980년대부터 어묵이라는 명칭이 확정되었다. 이때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언어습관 속에서 오뎅과 어묵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그럼, 오뎅이라는 음식의 실체는 대체 뭘까? 지금부터는 무대를 12세기의 일본으로 옮겨 보자.

 오뎅4 사본

| 풍년을 기원하던 축제의 음식

일본어로 오뎅을 표기하면 존경과 공손의 뜻을 가진 접두사 오お에 밭 전田자가 붙는다. 어원을 따져 보면, 자에 음악 악樂자가 붙은 덴가쿠田樂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를 우리식으로 풀이하면 농악이다. 농경민족이었던 한국과 일본은 너 나 할 것 없이 논밭에서 풍년을 기원하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축제를 즐겼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농악이고 일본에서는 덴가쿠다. 축제에 음식이 빠질 수 없는 법. 일본인은 두부를 나무 꼬챙이에 끼우고 된장을 발라 숯불에 구워 먹었으니, 이 음식의 이름 역시 덴가쿠라 했다. 농악 때 쓰이는 깃발의 모양과 비슷하다 보면 되겠다.

시간이 흘러 덴가쿠는 실내로 들어와 일상의 음식이 되었다. 구워 먹기만 하던 것을 국물을 자작하게 해서 조려 먹기에 이르렀다. 모양은 같아도 구워 먹는 것과 조려 먹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구운 것은 그대로 덴가쿠라 하고, 조린 것은 오뎅이라 했다. 그리고 이때 나눠 먹던 음식의 명칭 또한 덴가쿠라고 했다.

들판에서 먹던 덴가쿠는 함께 만들어 함께 나누는 음식이었지만, 오뎅은 여성이 만들어 남성에게 바치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음악을 뜻하는 이 빠지는 대신 존경과 공손의 뜻을 가진 가 붙었다.

이에 반해 덴가쿠에서 파생된 오뎅은 17세기 에도시대에 접어들면서 급속히 대중화되었다. 간장의 대중화와 가마보코의 유행 덕분이다. 에도시대 도쿄 주변 지역에서는 간장 양조업이 발달했다. 당시 간장은 서민들에게까지 널리 보급됐고 만능 조미료로 그 쓰임새가 다양했다. 오뎅에도 된장 대신 간장이 쓰였는데, 가쓰오부시와 다시마를 우린 국물에 간장으로 간을 맞췄다.

에도시대 이전만 하더라도 가마보코는 지역의 영주들이 공을 세운 무사에게 상으로 주던 일종의 하사품이었다. 지배계급의 음식이었고 그만큼 귀한 음식이었던 셈이다. 혼란스러운 정국이 통일되고, 강력한 일본의 오뎅은 그 낱낱의 재료들이 저마다의 명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오뎅집에서 이를 제대로 먹자면 최소한의 명칭은 알아 두는 것이 좋다.

봉건체제 도쿠가와 막부의 수도였던 에도에는 사람도 물자도 풍부했다지배계급이 향유하던 문화의 일부가 대중의 삶 속으로 유행처럼 퍼졌다. 가마보코 역시 그렇게 퍼졌고 오뎅과 만났다. 이때부터 오뎅은 어엿한 요리로, 술안주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말 그대로 에도의 패스트푸드였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오뎅은 지금도 포장마차(야타이)나 편의점의 단골 메뉴다. 오니기리(1978)에 이어 1979년 오뎅을 최초로 판매한 편의점 역시 세븐일레븐이었다. 이후 모든 편의점으로 확산되었고, 겨울 시즌에만 한시적으로 판매하던 것을 지금은 연중 취급하는 곳이 늘고 있다.

 오뎅3

| 어묵만으론 오뎅이 되지 않는다

에도시대에 이미 그 형태가 완성된 오뎅은 몇몇 재료가 추가되거나 지역별로 국물을 내는 방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지금까지 그 형태가 온전히 유지되고 있는 음식이다. 일단 주연 격인 어묵은 가마보코라고만 해도 어지간하면 주문이 가능하다. 가장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명칭이기 때문이다. 대구, 명태, 메퉁이, 도미, 조기, 붕장어, 복어 등의 흰살 생선을 으깨고 조미해 찌거나, 굽거나, 튀긴 것은 모두 가마보코에 해당된다. 그렇다고 가마보코 하나만으로 아는 척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으므로 약간의 심화학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일본 오뎅에서는 주연 못지않게 조연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몸값 역시 주연 못지않다. 특히 무와 문어는 오뎅집의 수준을 결정짓는 명품 조연이다. 이외에도 양배추에 쇠고기를 넣은 롤캐비지, 스지, 곤약, 달걀, 유부, 토란, 은행, 버섯 등도 눈여겨볼만하다. 한마디로 일본의 오뎅은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마음에 드는 주연과 조연을 적절히 캐스팅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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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현

지난 10년 동안 틈만 나면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해협을 건너는 배에서 일본 관련 책과 자료를 읽었고, 주로 두 다리로 규슈를 샅샅이 훑었다. 어쩌면 ‘한일 해협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기네스북 등재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 음식들은 언제부터 일본음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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