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본의 맛 #2]일본 곳곳의 오노 지로들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지난 10년 동안 틈만 나면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해협을 건너는 배에서 일본 관련 책과 자료를 읽었고, 주로 두 다리로 규슈를 샅샅이 훑었다. 어쩌면 ‘한일 해협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기네스북 등재도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의 여정이다.  우리가 일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 음식들은 언제부터 일본음식이었을까?

Editor’s note : 다섯 번에 걸쳐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의 원문을 소개할 예정이다. 저자 박상현 맛 칼럼리스트와 따비 출판사의 동의 아래 축약된 내용을 전달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본 음식이 어떻게 한국에 정착했고, 일본인은 서양식을 어떻게 일본 음식으로 정착시켰는지 저자의 10년간의 활동과 취재를 들춰보자.

| 일본 곳곳의 오노 지로들

그간 한국에서는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스시를 다루었다. 이때 거의 모든 다큐멘터리가 약속이나 한 듯 ‘스시의 기원’을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라오스, 보르네오 섬, 중국 광둥廣東 지방 등의 염장 생선에서부터 우리나라의 식해에 이르기까지 현지 취재를 통해 꼼꼼하게 살폈다.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음식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물론 의미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우리 음식도 아닌 스시를 두고 그 기원을 시시콜콜 따지는 것이 대중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시의 성공을 거울 삼아 한식 세계화의 단서를 찾기 위해서라면, 아니 그렇게 거창하게 갈 것도 없이 스시를 보다 맛있게 즐기기 위해서라면, 데이비드 겔브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분석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접근이다.

우선 개념부터 명확히 하자. 이 장에서 말하는 스시는 손으로 쥔 초밥이라는 뜻을 가진 ‘니기리즈시にぎりずし’다. 쥔다는 것은 밥을 손으로 뭉치는 것을 의미하고, 이렇게 뭉친 밥 위에 각종 생선을 올린다. 밥은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식초와 설탕으로 간을 했으니 이를 ‘샤리しゃり’라하고 밥 위에 얹는 생선은 ‘네타ねた’라 한다. 이러한 방식의 스시는 일본 에도시대 후기에 정착했고, 에도(지금의 도쿄) 앞바다에서 잡힌 생선을 주로 사용했다 하여 ‘에도마에江戶前스시’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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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기리즈시가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가 되고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게 된 것은 요리사, 어시장, 소비자, 가격의 네 가지 요소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일본 전통요리는 식재료가 가진 본질을 끌어내 맛으로 승화시키는 데 사활을 건다. 근대 이후에 정착한 음식들 역시 이 원칙에 충실했다.

그래서 장인의 반열에 오른 일본의 요리사들은 한결같이 ‘마이니치마이니치每日每日’를 강조한다. 매일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을 때, 나무의 나이테가 늘어나듯 조금씩 요리의 깊이가 생긴다는 의미다. 표준 레시피로는 알 수 없는 경험과 감각의 영역이다.

특히 스시처럼 단순한 음식일수록 이는 진리로 통한다. 오노 지로와 같은 스시 장인들은 쌀과 생선의 특징을 헤아리는 데 평생을 바친다. 오노 지로는 그저 상징적인 인물일 뿐 일본 전국에는 수많은 오노 지로가 있다.

스시가 대중화된 것은 냉장 설비와 장거리 유통이 가능해지면서부터다. 특히 항공 운송의 발달은 세계화를 부추겼다. 이때 세계화란 스시의 해외 진출 이전에 세계 각지의 수산물이 일본에 모이는 것을 말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어시장인 쓰키지시장에서는 총 480종의 수산물이하루 평균 2,000톤 이상 거래된다. 이 과정에는 820여 명에 이르는 중도매인들이 관여한다. 중도매인들은 자신이 취급하는 수산물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도쿄의 유명 스시야는 식재료의 대부분을 쓰키지시장에서 직접 구매한다. 아무리 경력 많은 요리사라 해도 자신의 경험 이전에 중도매인의 전문성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

비단 쓰키지시장뿐만 아니다. 일본 전국에는 규모만 다를 뿐 쓰키지시장과 유사한 어시장이 산재해 있다. 특히 이들 어시장에서는 요리사가 원하는 부위를 필요한 양만큼 구입할 수 있다. 재고에 대한 부담을 요리사가 지지 않고 중도매인이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요리사는 불필요한 비용 부담을 덜고, 중도매인은 합당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결국에는 서로가 상생하는 구조다. 어시장과 요리사가 각자의 전문성을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스시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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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만큼 정직한 맛

유명 스시 요리사가 전 세계로 진출하고, 수산물의 유통 시스템이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체계화되었음에도, ‘스키야바시 지로’ 같은 최고의 스시야는 여전히 일본에 있다. 이유는 소비자의 수준 때문이다. 특정 국가나 지역의 식문화는 대중의 수준과 비례한다. 서울, 뉴욕, 런던 미식가들의 수준이 아무리 높다 한들, 스시에 있어서만큼은 일본인의 수준을 따르지 못한다. 평생을 먹어 왔기 때문이다.

일본 외식시장의 주목할 만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예측 가능성이다. 음식의 질과 서비스의 수준이 가격에 정비례한다. 비싼 음식은 비싼 대로, 싼 음식은 싼 대로 이유가 명확하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조금씩 차이가 나도, 그 오차범위 역시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정해진다. 이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 주는 음식이 스시다.

일본에는 회전스시 전문점에서부터 수십 년 경력의 장인이 운영하는 정통 에도마에스시 전문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시야가 있다. 가격 또한 스시 한 점에 50엔인 곳이 있는가 하면 ‘스키야바시 지로’처럼 1,500엔이 넘는 곳도 있다. 무려 서른 배에 이르는 가격 차이는 재료와 요리사의 수준에서 비롯된다. 고객들은 이를 존중하고 일정 수준의 사회적 합의에까지 이르렀다. 터무니없이 싼 곳도 없을뿐더러 터무니없이 비싼 곳도 없다. 대중성을 지향하는 곳은 철저하게 대중성을, 고급화를 지향하는 곳은 철저하게 고급화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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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본에서 맛있는 스시야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당신의 형편이 허락하는 한 최고로 비싼 스시야를 가시면 된다. 바로 그곳에 당신에게 가장 맛있는 스시가 있다.” 규슈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가이드북이나 입소문 따위에 굳이 의존할 필요 없다. 소문난 곳은 손님이 몰려 오히려 불편할 따름이다.

가격 대비 만족도란 것도 스시에 있어서는 기호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의 기호가 내 기호와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 일본의 스시야는 당신이 지불하는 돈만큼 맛있고, 딱 그만큼 감동적이다. 불편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스시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진 음식이 된 까닭은, 실은 그것이 가장 자본주의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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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동안 틈만 나면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해협을 건너는 배에서 일본 관련 책과 자료를 읽었고, 주로 두 다리로 규슈를 샅샅이 훑었다. 어쩌면 ‘한일 해협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기네스북 등재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 음식들은 언제부터 일본음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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