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카쓰는 어떻게 일본 음식이 되었을까?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지난 10년 동안 틈만 나면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해협을 건너는 배에서 일본 관련 책과 자료를 읽었고, 주로 두 다리로 규슈를 샅샅이 훑었다. 어쩌면 ‘한일 해협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기네스북 등재도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의 여정이다.  우리가 일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 음식들은 언제부터 일본음식이었을까?

Editor’s note : 다섯 번에 걸쳐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의 원문을 소개할 예정이다. 저자 박상현 맛 칼럼리스트와 따비 출판사의 동의 아래 축약된 내용을 전달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본 음식이 어떻게 한국에 정착했고, 일본인은 서양식을 어떻게 일본 음식으로 정착시켰는지 저자의 10년간의 활동과 취재를 들춰보자.

 

| 메이지유신은 요리유신

봉건적 질서를 허물고 근대로 향한 메이지유신은 일본인의 식생활에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래서 더러는 메이지유신을 ‘요리유신’이라 부르기도 한다.

서기 675년 일본의 덴무天武 왕은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를 통해 소, 말, 개, 원숭이, 닭 등의 살생과 육식을 금지했다. 이는 불교의 영향이기도 했거니와 농경사회에서 생산의 기반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후손들은 이 칙서를 충실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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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금지’의 역사를 끝낸 메이지 왕을 기리는 메이지신궁.

이렇게 지켜 오던 육식 금지가 난관에 봉착한 것은 개국과 더불어 외국인이 몰려오면서부터다. 일본인은 자신들과 체급에서 현격히 차이가 나는 서양인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 차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근대화고 뭐고 말짱 도루묵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근대화를 이끌었던 정치가들은 왕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서양의 관료들을 접대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음식을 낼 필요도 있었다. 급기야 메이지왕은 1872년 1월 24일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을 궁으로 불러 서양식 만찬을 열었다. 1,200년간 지켜 왔던 육식 금지의 역사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후로 일본인의 식생활은 유례없는 변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제도를 바꾸는 데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지만,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생활습관을 바꾸는 데는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정부는 육식 장려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으나 국민은 머뭇거렸다. 육식이 익숙하지 않았을 뿐더러,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조리법조차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가장 일본적인 방식이 선택됐다. 쇠고기를 일본인에게 익숙한 냄비(나베)에 넣고 조렸으니 이것이 이름 하여 규나베牛鍋, 즉 쇠고기전골이다. 이때부터 일본인은 고기 맛을 알게 됐고 규나베는 도쿄와 요코하마橫濱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 가쓰레쓰와 돈카쓰

규나베로 고기 맛을 알게 된 일본인이 다음으로 도전한 음식이 돈카쓰다. 돈카쓰의 어원은 프랑스어인 ‘코틀레트cotelette’ 혹은 영어식 표기인 ‘커틀릿cutlet’이다. 이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 ‘가쓰레쓰’고, 가쓰레쓰가 온전히 일본음식으로 변형되면서 돈카쓰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 메이지 왕이 육식을 해금한 1872년 이래로 커틀릿이 돈카쓰가 되기까지는 근 60년 세월이 걸렸다.

이 과정을 오카다 데쓰는 《돈가스의 탄생》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쇠고기에서 닭고기로, 그리고 돼지고기로
  2. 얇은 고기에서 두꺼운 고기로
  3. 유럽식의 고운 빵가루에서 일본식의 알갱이가 큰 빵가루로
  4. 기름을 두르고 부치는 것에서 기름 속에 넣고 튀기는 딥프라이로
  5. 접시에 돈가스만 담던 데서 돈가스에 서양채소인 양배추를 곁들이는형태로
  6. 튀긴 고기를 미리 썰어서 접시에 담아 손님에게 내는 것으로
  7. 일본식 우스터소스를 듬뿍 끼얹는 것으로
  8. 나이프나 포크가 아니라 젓가락을 써서 먹는 것으로
  9. 밥과 같이 먹을 수 있는 일식으로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1번부터 5번까지는 아직 ‘가쓰레쓰’다. 그랬던 것이 6번에 이르면서부터 ‘돈카쓰’가 되기 시작한다. 흔히들 돈카쓰의 원조라고 알고 있는 도쿄 긴자의 ‘렌카테이’에서 내는 음식은 돈카쓰가 아닌 가쓰레쓰다. 실제로 렌카테이의 메뉴에 돈카쓰라는 음식은 없고 ‘포크카쓰레쓰ポ-クカツレツ’만 있다.

| 도쿄에서 만난 돈카쓰의 원형,가고시마에서 만난 돈카쓰의 현재

도쿄가 돈카쓰의 본고장으로 유명 전문점이 많다지만, 가고시마 사람들은 이런 명성을 살짝 비웃는다. 돼지고기의 품질과 신선도에서만큼은 우리가 최고라는 자신감 때문이다. 실제로 가고시마에는 많은 돈카쓰 전문점이 있고, 어느 곳을 가든 돈카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자신 있게 세울 수 있는 곳은 역시 ‘마루이치丸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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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스러운 가고시마 여인들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마루이치의 돈카쓰. 가고시마 흑돼지라는 최고의 재료까지 사용됐으니 맛과 볼륨감은 일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마루이치에는 등심돈카쓰와 안심돈카쓰 그리고 새우프라이 단 세 가지 메뉴만 있다. 다만 등심돈카쓰는 보통의 가고시마 흑돼지를 사용한 것과 최고 등급의 흑돼지를 사용한 것 두 가지가 있다. 일본의 돈카쓰 전문점을 처음 찾는 관광객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다양한 메뉴를 먹어 봐야 한다는 욕심에 이것저것 시켜서 나눠 먹는 것이다. 호기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는 ‘삽질’이다. 돈카쓰의 진정한 맛은 등심에 있고, 단 한 번의 선택이라면 고민할 것 없이 로스카쓰, 그중에서도 최고 등급의 로스카쓰를 선택함이 옳다.

우선 차림을 보자. 돈카쓰 접시 위에는 서장훈 손바닥만 한 돈카쓰가 미리 썰려 있고 채 썬 양배추가 곁들여졌다. 접시 옆에는 밥 한 그릇과 국 한 사발. 도쿄 렌카테이의 가쓰레쓰로부터 시작되어 100년이 흐른 전형적인 돈카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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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고많은 채소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양배추가 돈카쓰의 파트너가 되었을까? 이 역시 렌카테이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렌카테이도 초기에는 완두콩, 당근, 삶은 감자, 튀긴 감자, 으깬 감자, 샐러드 등을 가니시로 곁들였다. 그러다 러일전쟁(1904~1905)으로 요리사들이 죄다 징집되는 바람에 일손이 딸렸다. 그때 아쉬운 대로 양배추를 썰어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양배추가 가쓰레쓰를 먹은 후 입안에 남는 느끼함을 없애 주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양배추가 돈카쓰에 정착한 사연이다. 

하지만 고기가 아무리 맛있기로서니 이렇게만 먹으면 돈카쓰 맛을 반만 경험하는 꼴이다. 1895년 렌카테이에서 가쓰레쓰가 처음 등장한 이후로 지금까지, 일본인이 돈카쓰에 특유의 장인정신을 발휘한 까닭은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다. 돈카쓰가 일본인의 ‘소울푸드’가 된 까닭 역시 바로 이 점에 있다. 마루이치의 돈카쓰도 이 기분을 살려야 비로소 완성된다.

숨 쉬기조차 힘겨운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내를 산책하며, 이 모든 여정의 출발 장소였던 가고시마 중앙역 광장으로 돌아온다. 목숨을 걸고 유럽 유학을 떠났던 ‘젊은 사쓰마의 군상’들은 일본 근대화의 방법으로 화혼양재, 즉 일본의 정신을 바탕으로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다. 프랑스음식인 코틀레트가 가장 대중적인 일본음식인 돈카쓰가 된 과정에는 일본 특유의 근대화 과정과 방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음식은 때때로 역사의 일부분이자 중요한 증거가 된다. 가고시마가 일본 근대화가 잉태된 도시이면서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돈카쓰를 맛볼 수 있는 도시가 된 까닭이다.

140년의 시간과 1,500킬로미터에 이르는 돈카쓰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일본의 맛’을 찾아 떠나는 본격적인 기행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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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현

지난 10년 동안 틈만 나면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해협을 건너는 배에서 일본 관련 책과 자료를 읽었고, 주로 두 다리로 규슈를 샅샅이 훑었다. 어쩌면 ‘한일 해협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기네스북 등재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 음식들은 언제부터 일본음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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