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적감성요리사

[박찬일 셰프 칼럼] 아시아적 감성의 요리사가 되라

| 아시아음식에 대한 관대한 수용이 눈길을 끌었다

얼마 전, 북유럽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스칸디나비아 쪽이 원래 각별한 음식 문화가 두드러지는 곳이 아니어서 그런지 소박하고 조촐한 스타일의 음식이 주종을 이뤘다. 자국 고유의 음식도 있었고, 다른 나라의 음식을 많이 받아들여 소화해 내는 것이 특징이었다. 거리의 식당들은 소박하다 못해 요리사가 거의 농땡이를 치는게 아닌가 싶은(?) 음식들이 주종이었다. 으깬 감자와 크림소스, 연어와 청어, 별다를 것 없는 고기 요리가 한 접시에 그득하게 나오는게 많았다. 추운 해양국가 특유의 저장성 강한 생선요리를 별다른 가공 없이 접시에 올렸고, 물론 살인적인 가격도 눈길을 끌었다. 20%정도의 소비세를 물리는 지역이라 음식값이 비쌀 수 밖에 없기도 했다.

아시아적 감성 스칸디나이바 음식
스칸디나비아 음식

자국음식문화의 개성이 유별난 곳이 아니어서인지 아시아음식에 대한 관대한 수용이 눈길을 끌었다. 태국과 중국, 일본풍의 음식들이 어색하게 동거하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한식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는데, 재미있게도 서점에서 본 레시피북에서 김치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여러 유럽 국가에서 공통으로 느끼는 바이지만, 그들은 아시아 음식의 나라별 개성에 대해 거의 무지하다시피 했다. 영국이나 독일만 해도 중국과 일본음식 정도는 나뉘어 팔린다. 동남아시아 음식이 중국음식에 편입되고, 한식이 종종 일식에 합쳐져서 팔리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북유럽은 거의 모든 아시아 음식이 하나로 뭉뚱 그려져 있다. 내가 호기심 있게 보자 동행했던 친구가 한마디 한다. “어이, 친구. 당신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음식을 구별하는가? 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도 구별이 안되네만.”

맞는 말이었다. 나는 유고와 체코, 폴란드 음식을 구별하라면 두 손을 들고 말 것이다. 결국 아시아 음식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도입 시기의 지역에서는 하나로 통합되어 마케팅되는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문제는 아시아 음식의 수준이 유별나게 낮았다는 데 있다. 중국식은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화교 카르텔에 의해 수준 있는 요리사들이 일을 하고 있어서 좀 나았지만, 일본식과 동남아식을 합쳐놓은 이른바‘아시안 퀴진’은 도대체 어떤 음식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스시에 동남아 소스가 제공되기도 했고, 말아놓은 김밥의 수준은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한국의 요리사들이 생각났다.

| 동양식을 할 수 있는 요리사라면 취업의 문을 열기 어렵지 않다

한국인들은 특유의 성실성과 손 감각, 훈련된 자세로 세계 어디를 가든 처음의 낮은 인식을 뛰어넘어 두각을 나타낸다. 에드워드권도 아마 그런 경우에 해당될 것 같다. 나는 한국의 요리사들이 더 많이 유럽으로, 미주지역으로 진출했으면 한다. 최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는 한국인인 아키라 백을 다뤘다. 그는 치열한 미주 지역의 파인 다이닝 싸움터에서 인정받았다. 유럽에 있는 후배들의 전언도 비슷하다. 한국인에 대한 현지의 평가가 매우 우호적이라는 사실이다. 이탈리아에 있는 후배들의 연락도 고무적이다. 특히 생선을 잘 다루고 끈기가 강한 한국인을 미슐랭급 레스토랑에서 서로 쓰려고 다툰다는 얘기였다. 북유 럽의 노동 시장은 경직되어 있어서 외국인이 쉽게 취업하기는 어렵겠지만, 수준 있는 동양식(중국식이든 일식이든 한식이든 말이다)을 할 수 있는 요리사라면 취업의 문을 열기 어렵지 않은듯하다.

아시아적 감성 요리사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국내 요리학과에서 배우는 학생들의 유별난 양식 선호다. 최근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웬만한 학교에서는 70% 이상 양식을 원한다고 한다. 다른 아시아 퀴진 분야가 열악한 경우가 많고, 파인 다이닝이 서울의 강남을 중심으로 양식에 치우치다 보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잘할 수 있고, 잘하는 분야에 집중할 사람이 더 늘어야 한다. 이런 쪽을 지망하는 학생이라면 아마도 블루오션에 해당한다고 해도 좋다. 동유럽 쪽도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아시아 퀴진, 특히 한국인이 잘할 수 있는 일식과 한식 쪽의 구인이 여전히 활발하다. 동유럽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의 노동이주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힘들게 ‘스타주(실습)’ 생활을 전전하며 그다지 밝지 않은 불투명한 양식 요리사로서의 미래를 바라보는 것보다 강력한 우리의 무기인 아시아퀴진의 기술을 연마하는게 더 큰 장점이 있어 보인다.

최근 내게 물어오는 요리사 지망생들에게 나는 이런 내용으로 추천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덧붙인다. 양식을 하더라도 결국은 아시아 음식의 터치와 저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요리사가 훨씬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현재의 양식은 이미 아시아적 강점을 어떻게 녹여 내는가 하는데 큰 에너지를 쏟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인이 아닌가? 그 장점을 스스로 더 갈고 닦을 필요가 있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About 박 찬일

박 찬일
월간지 기자로 일하다 이탈리아로 건너가 ICIF에서‘요리와 양조’과정을, 슬로푸드 로마지부에서 소믈리에 코스를 마쳤다. 시칠리아 ‘파토리아델레토리’레스토랑에서 현장 요리 수업을 거쳤으며 2002년 귀국해 ‘뚜또베네’, ‘논나’, ‘라 꼼마’를 거쳐 현재 서교동 ‘몽로’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와인스캔들], [보통날의 파스타],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가 있으며 각종 매체에 음식과 와인에 관한 칼럼을 활발하게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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