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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빚은 배려의 밥상, 이종국 요리연구가의 음식철학을 듣다

세계 어디에서도 100년이 담긴 밥상은 찾기 힘들다.  담근지 50년 또는 30년 된 장이 쓰인 밥상에는 요리사가 낼 수 없는 맛이 올려진다. 그리고 그 음식들에는 세월이 빚어 놓은 배려가 남겨져있다. 이 배려란 것이 식재료가 갖고 있는 고유한 맛을 살려내고, 제철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요리사는 그저 배려 속에 있는 빈틈 사이로 자신의 철학을 살짝 더하면 그만이다. 이 모든 게 우리 음식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 음식은 배려와 요리사의 철학이 공존해야 한다”고 늘상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북악산 초입, 성북동에 거주하는 이종국 요리연구가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연구소(단독주택을 개조 한)에는 해외 귀빈들이나 한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상차림이 마련된다.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 집안의 3남1녀 중 막내. 어릴적부터 그의 입맛은 남달랐다. 미각을 타고난 아들에게 어머니는 우리 음식의 순수한 맛을 남겨주었고, 지금의 요리활동에 지대한 자산이 됐다. 자라면서는 형제들의 밥상을 차렸고,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할 때에는 직원들 식사를 손수 챙겨줄 정도였다. 요리 욕심이 커서였을까? 서양화를 전공했던 그가 요리로 업을 바꾸게 된 때도 직원들에게 손수 음식을 차려주던 이 즈음이었다.
음식 솜씨가 소문이 나고, 잡지에 음식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하자 내로라하는 귀부인들이 그의 요리를 맛보고자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자연스레 우리음식 요리 연구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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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칠 스승이 부족하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거대 화두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 음식의 맛을 정확히 알고 있는 스승이 부족하다. 어떤 맛인지 알고 있어야 식재료와의 궁합도 맞출 수 있고, 우리 음식의 정체성도 논할 수 있다. 우리 장 맛을 아는 스승이 적기 때문에 한식 요리사의 저변이 좁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 우리에게는 한식 세계화에 첨병인 요리 스승이 부족한 상태다. 우리 음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젊은 셰프가 탄생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란다.
이어서 그는 우리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적인 영양학 이론뿐만이 아니라 우리 음식이 갖고 있는 탄생 스토리나 인체와의 조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외국인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30년 된 간장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겠어? 그리고 어느 계절에 무슨 나물과 만나고 어떤 요리에 들어가면 맛이 사는지 등 이야기꺼리가 얼마나 많은데… 놓치면 안된다. 이런 부분. 다 알려주는 스승이 부족해서 그래.”
시간이 만들어주는 우리네 장맛은 셰프가 임의로 낼 수 없는 그것이다. 결국 오랜 시간이 걸리는 우리 음식의 특수성은 요리사에게 우리 음식에 대한 전문성을 요구한다.  “제철에 난 식재료로 장을 담그면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맛이 만들어진다. 요리사들이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부분인게다.”
그렇다고 장을 직접 담글 필요는 없단다. “일단 뛰어난 장맛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부모세대부터 공장에서 만들어 낸 장맛을 전수하니 좋은 장이 어떤 맛인지 알 턱이 없지 않아?” 일명 요리사의 ‘공력’이라는 말은 ‘식재료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와 일맥상통 한다.  요리사들이 제철 식재료를 알기를 금같이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그의 논리다.
예전 우리 할머니 세대에는 채집요리, 제철 음식이라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로컬푸드’라든지 ‘팜 투 테이블’ 등의 자연 친화적인 요리 트렌드가 성행하고 있다. 결코 우리에게는 색다른 요리 방식이 아닌 셈이다. 우리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그만큼 자연스러웠고, 그 방식을 계승하는 요리사가 필요하다고 그는 설명한다. “결국 가르칠 선생이 부족하니까 젊은 셰프들이 한식을 꺼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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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식 세계화는 국가적인 지원도 뒷받침 돼야

“공무원들의 밥값을 올려야 돼!(웃음) 근데 이게 꽤나 중요해. 일단 정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우리 음식을 제값 주고 먹고, 만족할 수 있어야 국가적인 지원이 가능하거든.” 얼마전 프랑스는 실추된 미식 국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유명 셰프와 레스토랑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태국도 마찬가지다. 태국 음식이 세계화에 성공한 것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를 빚대어 강조한 것이다.
그는 특히 인재 양성에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세계적인 요리사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독창적인 요리를 한다는데에 있다. 그들은 이종간의 결합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국의 요리 정체성을 기반으로 유명 해외 요리 기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외국 요리사들은 우리 장으로 별걸 다 만드는데,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나? 더욱 창의적인 요리가 나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젊은 요리사들이 성장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해외건 어디건 보내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색을 찾는 요리사가 나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단다. 우리 음식으로 자기만의 요리색을 담아내길 원한다는 그의 말에는 능히 세계 요리도 두루 다룰줄 아는 실력이 있어야 함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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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에게 한국 음식이라고 하면, 맵고 짠 음식이라고만 말하게 할건가? 진짜 우리 음식을 알려줘야지.” 그의 음식 철학은 새삼 한식에 문외한이던 한국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이기도 하며, 좁은 식견(食見)을 넓혀주기에는 더할나위 없다. 그는 자신의 철학과 요리 인생을 이해하고 함께 할 동지들을 아직도 욕심내고 있다.

 

About 이 인규

이 인규
'미식에는 층위가 없다. 단지 아직 느끼지 못한 음식이 있을 뿐.' 이래 생각합니다. 비록 글로 배운 음식문화이지만, 혀로 배우고 사색하기 시작하면서 그 한계를 넘고자 합니다. 나에게 있어 한계는 맛을 표현하는 글인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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