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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파티셰로 산다는 것

재작년에 생긴 팔 힘줄염에 이어 이번엔  등 근육 경련이란다.
베이고 데인 흉터로 뒤덮인 손과 팔로 저린 등을 부여잡은 채 병원에 가면
십중팔구 뭐 하는 사람인지를 묻는다.

페이스트리 셰프(Pastry Chef)라고 하면 다들 알겠다는 듯,
당분간은 무거운 것은 들지도, 밀지도, 쳐다보지도 말라고 한다.

결국 ‘당분간은 일하지 말고 집에 있어’라는 소리다.

| 요리사로 일한다는 건 고충이 수반됨을 의미한다

오는 2월 말부터 일하게 될 회사의 채용 공고 시 안내된 직무기술서에는
‘Move, lift, carry, push, pull and place objects weighing less than or equal  to 25 pounds without assistant.’
라는 문장이 있었다.
25파운드. 즉, 밀가루 한 포대에 달하는 무게 정도는 스스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뭐든 들고, 밀고, 당길 일이 아주 많아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다. 나중에 이를 두고 문제 삼지 말 것. ‘우린 미리 경고했음!’ 이라고 알려 주는 거다.

줄줄이 이어지는 다음 문장에는
‘Move over sloping, uneven or slippery surfaces. Reach overhead and below the knees including bending, twisting, pulling and stooping.  Stand, sit or walk extended period of time.’
‘대부분의 시간을 서거나 앉거나 걸어다닌다. 당신의 키보다 높은 곳이나 당신의 무릎보다 낮은 위치에 물건을 오르내릴 일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허리를 굽히고 웅크리고 뒤틀어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모든 동작은 경사지고 미끄러운 바닥 위에서 일어난다.’

처음 읽고선, “친절하기도 하네. 뭘 이런 것까지 써놨담.” 싶었지만 요리사로 일한다는 건 이런 고충을 수반하는 일임을 각오하고도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토마스 켈러 레스토랑 그룹 소속 ‘프렌치 런드리’와 ‘퍼세’, ‘부숑’, ‘부숑 베이커리’, ‘애드 혹’의 주방 속 모든 시계에는 ‘Sense of Urgency(긴박감)’ 라 적힌 푯말이 붙어 있다. 시간만 확인해도, 저절로 군기가 들어간다.
토마스 켈러 레스토랑 그룹 소속 ‘프렌치 런드리’와 ‘퍼세’, ‘부숑’, ‘부숑 베이커리’, ‘애드 혹’의 주방 속 모든 시계에는 ‘Sense of Urgency(긴박감)’ 라 적힌 푯말이 붙어 있다. 시간만 확인해도, 저절로 군기가 들어간다.

두 가지 병 모두 산업재해로 처리되어 유급 병가며 진료비, 약값, 물리 치료비 등이 회사 부담으로 전액 지원되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다. 그치만, 평생 몸으로 먹고사는 직업인지라 결국 다치면 내 손해일 뿐이다. 게다가 내가 빠진 자리의 잔업을 대신할 동료들을 생각하면 마음 편히 쉴 수도 없다. 결국, 뻐근한 등을 파스로 달래며, 2~3일 후 출근하는 것 외엔 별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이런 실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말 많은 친구가 ‘파티셰’가 되겠다며 부리부리한 눈을 한 채  업장을  찾아온다. 꼭 내가 그랬던 것처럼.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 재학 시절,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매일 같이 실습실로 달려가 그날 배운 쿠키며 빵을 교과서의 사진과 똑같이 나올 때까지 만들어 대곤 했었다. 이후엔 교내 도서관으로 가 퀴즈며 중간고사 준비를 위한 복습을 했고, 시험이 없는 기간엔 ‘너가 이번 학기 가장 많이 대출해간 학생이다’라는 사서의 볼멘소리 섞인 칭찬을 들어가며, 디저트 관련 도서를 읽어 댔다. 학기 초반엔 직장 생활까지 병행해야 했고, 머지않아 인턴십까지 시작하게 된 터라,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생활이 이어졌다.

그렇게 극성을 떨어댄 결과,  막상 스물 세 살엔 거리가 멀었던 ‘올 A’라는 것을 받고  최우수 영예 졸업까지 앞둔 채 취직이  됐을 땐, 이제 고생이 끝났다 싶었지만…, 웬걸 그게 시작이라는 걸 알아채는 데에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bouchon bakery

| ‘배움’과 ‘경험’이 돈만큼이나 절실했다

무엇을 얻으려고, 그토록 아둥바둥 했던 것일까. 서울에서 딴 일을 하며 먹고 살다, 이 업계에 기웃거린지3년 정도 됐을 뿐인 나는 아직 이러한 자문에 자답을 내릴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요리 학교 시절 꿈만 꾸던 많은 일들이, 일을 하면서 실제로 이루워 지긴 했다는 것.

중형차 가격에 맞먹는 호발트(Hobalt)사의 30, 60, 80쿼트(qt) 별로 갖춰진 믹서 옆 나란히 자리한 론도(Rondo)사의  전자동 시터 – 반죽 따위를 펴는 기계(Sheeter),  그 위로 주렁주렁 걸린 올 클래드(All Clad)사의 냄비와 팬은 물론이요.  30개의 시트 트레이 분량을 단숨에 구워내는 로테이팅 컨벡션 오븐(Rotating Convection Oven)에 냉장을 겸하는 발효기, 부스(Boos) 목재 보드로 전체 마감된 테이블, 커스타드며  아이스크림 베이스 등의 조리, 살균, 쿨링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파스토셰프(Pastochef)  등이 갖춰진 호사스런 주방 환경. 자매 레스토랑, ‘퍼 세(Per Se)’와 ‘프렌치 런드리(French Laundry)’의 페이스트리 셰프에게서 받는 개인 트레이닝,  밑줄 그어가며 읽어댔던 ‘부숑 베이커리(Bouchon Bakery)’  책 속의 제품들이 내 손안에서 판박이로 탄생한다거나  토마스 켈러(Thomas Keller) 사장님이 불쑥 하고 나타나 건네는 하이 파이브 등은 분명 내가 가진 버킷 리스트들 중 하나였으니까.

bouchon

물론 나는 이러한 경험들이 뉴욕의 미친 물가에 아랑곳 않는 어처구니 없이 낮은 ‘열정 페이’를 보상해 준다고 믿을만큼의 이상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배움’과 ‘경험’이 돈만큼이나 절실했었기에 발을 들여놨을 뿐. 이미 삼십 대 후반을 향해가는 나이에, 체력 없인 못 버티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지금으로선 모르겠다.

그래도 파이핑 백과 스파출라를 손 떨림 없이 휘두를 수만 있다면 주방에 남아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결론은 일단 이놈의 밸런타인 데이용 하트 쿠키 480개에 로얄 아이싱(Royal icing)이나 마저 좀 칠한 후에!

About Beth KIM

Beth KIM
'아레나 옴므 플러스'와 '루엘'등의 남성지 에디터로 지내다, 2011년 도미. 미 동부 보스톤에 위치한 '르 꼬르동 블루'의 'Patisserie & Baking' 과정 수학 후, 토마스 켈러가 운영하는 뉴욕 록펠러 센터의 '부숑 베이커리'에서 'Chef de Partie'로 일하고 있다. 오는 2월 말부터는 보스톤의 '리츠 칼튼 호텔'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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