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imes] 페란 아드리아, “나는 아직도 굶주렸다. 엘불리 휴업은 창의성을 충전하기 위함이었다.”

페란 아드리아
11월 어느 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페란 아드리아가 도착했다. 스페인 셰프인 그는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진 레스토랑(el Bulli)을 운영하면서 가히 혁신적인 요리법을 개척한 셰프로도 유명하다.

그의 사무실에는 손수 연필로 스케치한 마인드맵으로 가득한 칠판이 있다. 그는 종종 칠판을 응시하고 책장에 가득히 진열된 책을 뒤적인다. 그러다 그의 시선을 끈 것은 진열대 끝에 놓인 갖은 종류의 아시아식 스푼(Asian Spoon)이었다. 그는 카탈루냐어로 그를 따르던 작은 무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와인이 무엇일까요?”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4초, 5초, 10초. 마침내 모여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대답했다. “마시는 음료 아닌가요?” 그러자 그는 흥미롭다는 듯 그 사람을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만약 내가 와인잔에 담으면 음료가 되겠지요. 하지만 내가 소스나 요리에 사용한다면?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더욱 고요한 침묵만이 흐르고, 그는 다시 이야기했다. “내가 와인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면 뭐가 될까요?”

엘 불리(El Bulli)가 2002년과 2009년 사이에 세계 탑 레스토랑에 위치할 때에도 52세의 페란 아드리아는 여전히 호기심이 왕성한 요리사였다. 많은 요리사 사이에서도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언제나 엉뚱한 질문을 하곤 했다. (그의 주방 직원들이 말하길, 그는 지나치게 꼼꼼하다고 한다.)

엘 불리는 그의 독창적인 생각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그는 총 1,846가지의 요리를 만들었고, 밀려오는 많은 미식가의 미각을 자극했다. (아티초크를 장미꽃처럼 활용한다든가, 올리브 모양을 한 얼린 올리브즙 따위로 말이다.) 그런 그가 2011년 레스토랑의 문을 닫았다. 언론의 반응이나, 집안 문제, 경영상의 이유는 아니었다. 단지 미식가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뿐이었다. 엘 불리는 1년에 6개월간만 문을 열고 하루에 저녁 서비스 한 번만 한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엄청난 압박이 아닐 수 없다.

아드리아

그는 이렇게 물었다. “이 기분을 이해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마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현재 그는 새로운 도전에 임하고 있다. 8만 유로를 투자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의 노력을 돈으로만 환산할 수는 없다. 이제 세계는 페란 아드리아의 차후 행보에 주목할 것이다. 지난 3년 정도의 시간은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임이 분명하다. 엘 불리 재단(el Bulli Foundation)을 설립하고, 모든 역량을 창작에 쏟아 부을 것이다. 그리고 재단이 어떤 난관을 만나더라도 그에게 잠재된 수많은 능력이 그 모든 상황을 뛰어넘게 만들것이다.

아드리아의 목표는 무엇인가? 재단이 하는 일은 상당히 복잡하고 다채롭다. 예를 들어 불리피디아(Bullipedia) 작업에 몰두하는 그룹(완성되면 아마 고난도 요리기법이 탑재된 위키백과 역할을 할 듯하다)과, 반대쪽 방에서는 한 여성이 음식 관련 역사책들을 조합하며, 창문 너머에는 세 명의 남자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연구를 하고 있다.

아드리아는 안경을 올리며 계속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 이제 그는 자신과의 싸움보다도 회사와 국가, 나아가 전 세계 요리사들의 기대에 더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다. “허황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 재단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룩할 것입니다.”

 

비즈니스가 아닌 비즈니스

점심시간이 되기 전 녹화채소와 라비올리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 편한 자세로 말했다. “사람들은 나보고 미쳤다고, 괴짜라고 말할지 몰라도, 사업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비즈니스는 본래의 이윤을 추구하는 비즈니스와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한창 손님이 많이 왔었던 2001년도를 기점으로 엘 불리는 점심장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약 100만 유로 정도의 거대한 자금을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아드리아에 더욱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 수익의 20%를 음식 개발비용에 쓰는 결정도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당시의 결정은 지금의 엘 불리를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그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수익을 안겨줬다. 엘 불리 자체가 큰 수익을 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엘 불리의 명성과 아드리아의 업적은 돈으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엘 불리를 통해 2010년 40만 유로 정도의 연간 수익을 냈고, VIP 디너 기부금 수익은 350만 유로에 달했다.

그렇지만 엘 불리 재단은 수익 단체가 아니다. 그는 개발에 관심이 있는 모든 요리사에게 큰 흥미를 전달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곳은 아이디어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무엇이 그를 이 엄청난 일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엘 불리가 문을 닫기로 한 후 그는 마드리드에 있는 텔레포니카(Telefonica)-스페인 통신 전문업체, 편집자 주- 의장인 세자르 엘리어터(Cesar Alierta)를 만날 기회를 얻었다. 엘리어터는 아드리아의 계획에 관심을 가졌고, 힘을 실어주기로 약속했다. 계약을 성사시킨 아드리아는 텔레포니카의 홍보대사로 일했다. 2014년 전반기 회사 내 설문조사에 따르면 59%던 창조적 미래가치 만족도가 아드리아의 합류 이후 70%까지 올랐다고 전한다.

아드리아는 일반적인 걱정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그와 그의 직원들은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히 한 발짝씩 나아갔다. “창조에 열정적일 필요는 없다. 그 일에 전문가가 되면 해결된다.” 그는 자기의 생각, 목표, 철학에 지대한 신뢰가 있었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얼마만큼 호감을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재단을 두 가지 목표로 나누어 운영했다. 하나는 지식, 불리피디아를 만드는 일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연구· 개발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음식이 개발되는 과정을 낱낱이 분해, 해석하는 일이 여기에 해당되겠다. 그는 이 그룹(엘 불리 Lab)을 엘 불리의 DNA라고 불렀다. 엘 불리 Lab은 바르셀로나에 있으며 그는 엘 불리 DNA 그룹이 좀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항상 연구했다. 6W Food-과학과 예술, 음식을 복합적으로 만든 뮤지엄 개념의 프로젝트, 편집자 주-는 엘 불리 Lab과는 다른 프로젝트이며, 몇 년 후에나 선보일 예정이다. 아마도 과학과 미술 박물관의 조합을 볼 수 있는 미학 세계의 박물관이 될 예정이다. 그리고 검색엔진 Seaurching(말장난 같은 합성어) 또한 그의 동료 중 한 명이 지은 후에보라는 디지털 프로그램도 선보일 예정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2시간을 이동하면 보호구역인 캡 크리우스 자연보호구역(Parc natural del cap creus)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에게 영감을 주었던 장소로 유명하다. 그리고 푸디(Foodie)들은 수년 후 이 좁은 도로 해안선을 지나, 익숙한 불독 그림이 붙어 있는 현관문 너머에 놓여있는 그림 같은 음식을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지금은 먼지가 뒤덮인 작은 집일 뿐이고, 직원들이 육류 보관소로 불렀었던 작은 저장실은 엘 불리 재단의 주축이 될 건축 설계도가 가득 쌓인 사무실이 되었다.

그의 계획은 이렇다;  전시장 사방이 유리로 되어 바다가 보이는 회의실과 기부행사를 위한 주방, 이곳이 바로 엘 불리 1846이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드리아의 계획이 발표된 후 생태학자들이 공원 발전계획에 96,000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행정 관청에 제출한 것이다. 환경단체 대변인인 바바라 슈미트(Barbara Schmitt)는 “수천 명의 여행객들로 야생환경이 파괴될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와 아드리아와의 미팅이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드리아는 그 미팅에서 하루에 25명만 방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바바라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맞는 말이었다. 아드리아의 기발한 생각들의 단점은 그 자신도 주체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설령 아이디어가 옳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법적으로 아드리아는 그의 토지를 20%나 늘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혹자들은 아드리아가 결국엔 원하는 대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지금의 시장인 몬트세란 민단(Montserrat Mindan)은 그에게 관심이 있고, 도와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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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환경단체의 불만을 감소시키고, 동시에 마을의 명성을 높여줄 아드리아의 선택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는 “아드리아가 우리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거다”라고 이야기한다. 카탈리아 의원이자 도시계획 장관인 산티 비야(Santi vila)는 개발에 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아드리아가 논란을 피해 가는 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아드리아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와 비슷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단체는 F.C 바르셀로나 정도다. 그만큼 매거진이나 대중에 알려진 카탈루냐인이 있을까?”

 호기심의 힘

6시가 조금 넘자,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던 햇빛이 조금 사그라지고 아드리아는 아주 잠시 테이블 끝에 앉아 있었다.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쉬기가 힘듭니다.” 그가 익살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는 하루에 18시간씩 일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그리고 동시에 이 일이 제때에 식사하기도 힘든 일인지 말한다. “몰디브에서 즐거운 삶을 사는 게 맞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큰 원동력 중의 하나는 매일 밤 ‘난 요리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구나!’ 라고 되뇌는 순간에 생긴다.”

그는 레스토랑을 다시 여는 일을 꺼리고 있다. “이제 그 일은 끝났다.” 나지막이 그가 말했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사그러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 동생인 알버트(Albert Adria) 출연 중인 ‘마스터셰프’와 ‘탑셰프’를 시청한다. 아드리아가 집에서 요리할 때는 최대한 간단하게 한다. 그러다 문득 1994년 처음으로 음식을 재해석했던 당시를 떠올렸단다. 그는 “쌀을 볶은 달걀로 대체하고, 아이스크림 같은 토마토를 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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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모두 방에서 나간 후 그는 안경을 올리며 방안의 책상과 칠판에 붙은 종이, 컴퓨터 스크린을 보았다. 그는 방안을 걸어 다니며 그가 갖고 있던 질물들을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아이폰은 무엇일까? 기술은? 양상추는 무엇일까?” 그러면서 그는 “나는 양상추를 이해하는 데 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진지했다. 아마도 아드리아를 이해하려면 그가 걸린 시간만큼이나 오래 걸릴 것이다.

그가 추구하던 기술 혁신은 이제 지식과의 융합을 추구하고 있다. 수많은 자료가 필요함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3명의 사람이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그토록 열심히 연구하였으리라.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열심인 이유도 아드리아의 성실함이 그들에게도 남아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비록 그가 무엇을 할지는 대중들에게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연구 멤버 중의 한 명은 “엘 불리 재단은 그 만들어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아드리아가 천재적인 능력이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 있으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해는 저물고 사무실은 조용했다. 아드리아가 책상 위의 노트북을 응시했다. 그는 흘린 듯이 노트를 넘기며 요리법의 역사를 예부터 지금까지 기록된 대로 살펴보고 재료의 특성, 요리의 테크닉, 수많은 변천사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한마디 했다. “내가 여기에 있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난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원문보기 : http://www.nytimes.com/2015/01/04/business/ferran-adria-the-former-el-bulli-chef-is-now-serving-up-creative-inquiry.html?_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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