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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正餐) 이상의 노력과 준비, 이승언 셰프를 만나다.

홍대에서 시작한 시카고 피자? 피자시장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킨 [시카고피자]는 새로움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도전거리를 안겨주고, 대중적인 메뉴인 피자를 요리라는 인식을 심겨주는데 성공했다. 홍대에서 점포를 오픈하고 대략 1주일만에 생긴 웨이팅과, 매일 경신되는 매출기록은 주변 피자집들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결국 똑같아 보이는 피자를 만드는 곳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공연한 외식산업의 문제가 [시카고피자]를 대두로다시 불거진 것이다.

단순한 피자가 아닌 다이닝에서나 필요한 미장(준비) 작업을 통해 맛보는 고객 누구에게나 정성을 대접하는 이들은 인스턴트식 여타 피자와의 차별에 성공했고, 그 철학안에는 외식에 대한 끈적한 매달림이 있었다. 괴짜같은 행보로 ‘요리 오타쿠’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 그가 만들어온 요리는 일견 다를바 없을 모양새이고, 섬세해 보이진 않아도 그 과정은 어느 다이닝보다 처절했고, 계산적이었다.

또 한가지, 예술성과 대중성. 다른 산업군은 차치하더라도 외식산업에게만큼은 이 둘의 영화로운 조화가 시급해 보인다. 지구촌이라는 시대적 명명도 시큼해진 이때, 대중의 입맛에 대한 거대한 담론이 꽤 오랫동안 결론을 맺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봐도 과하지 않다.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를 첫머리에 꺼낸 이유는 이번에 만나본 시카고피자의 이승언 셰프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화두라서 그렇다. 요리사라는 타이틀이 오묘하게 플레이팅 된 이승언 셰프는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가니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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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正常)아닌 시기를 넘어, 정상(頂上)을 향한 여정

“생각이 비비 꼬였었어요. 천주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철학적인 생각에서 시작한 의심이 기성세대와 기성 문화를 통째로 싫어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그는 학교 축제 때 충격을 안겨주기로 결심했다. 학교 선생님인 신부님과 수녀님, 학부모와 학생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피의 콘서트를 ‘해버렸다’. 가짜 피와 데스메탈로 축제를 발칵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후 학교생활은 짐작할 수 있을 법한 부모님 호출과 정학으로 채워졌다. 당시 세상에 대한 불만과 표출은 겉도는 외톨이로서 살아남는 법을 체득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첫마디부터 “뭐 그냥 아웃사이더입니다. 셰프로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요리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과한 자기 겸손이다.

이 셰프는 급식조리사로 부엌일을 시작했다. 별다른 꿈이나 생각도 없던 시기였고, 앞을 내다보기에는 아직 꿈의 키가 자라지 않아 멀리 보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냥 영양사 자격증 하나 따서 식품계열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같이 일하던 형의 한마디가 꽤 깊이 들어왔다. ‘급식은 과학이고, 요리는 예술이다.’ 그 형의 전언은 영문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이승언의 키(key)를 움직였다. 그리고 이 셰프는 조리학과로 적을 옮긴다.

가로 걷던 그의 습성은 대학시절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리학과를 6개월 다니다 보니 커리큘럼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교수에게 꼬치꼬치 질문을 했죠. 당시 학교에는 조리 과정에 대한 원리나 해답을 알려주기보다는 윽박지르는 교수가 많았어요.” 결국 한 학기 전과목 F학점을 받았다. 이후 그는 전공과목이 아닌 교양과목으로 학점을 채우고 바로 유학을 준비했다.

 

| 유학에 실패하다

그가 갖고 있던 포부가 그리 컸을까? 누구의 시샘인지는 모르지만 가세가 급류를 탄 듯 기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려웠지만 대학생활까지는 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요리사 유학코스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

그는 유학으로 성공을 계획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부산 밤거리를 걷곤 했다. 그리고 그 길가에서 현지 교정에서는 만날 수 없는 귀한 인연을 만났다. 부산대학교 앞 이탈리안 3명이 운영하는 업장에 발을 붙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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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할머니 한 분과 아들 2명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당시는 한국에서 찾기 힘들던 이탈리아 현지 식재료를 100% 사용한다는 점과 학교 정규과목시간에는 배울 수 없는 이탈리아 가정식 또는 현지인들의 입맛을 배울 수 있는 금쪽 같은 시간이었다.

소중한 인연을 시작으로 서울 청담동에서도 이탈리아 현지인들과 일할 수 있게 됐다. 이후 가는 곳마다 유럽의 다이닝 문화와 요리를 배웠고, ‘오거스틴 나인틴’에서 돼지고기로 요리를 만들면서 유명세를 탔다.

“오픈 초기에는 매일 메뉴판을 새로 만들고 에피타이져부터 디저트까지 생소한 메뉴로 구성해보는 실험적인 요리를 냈어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맛보지 못했을 부위(돼지 코, 귀 껍데기 등)를 이용해서 관심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실험적인 메뉴는 미디어에 그를 노출시키게 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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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멀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한다

과연 우리에게 유럽이나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양식 정찬(正餐)이 성공할 수 있는가? 일단 그의 대답은 ‘어렵다’이다.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 전반적인 의식 수준의 개혁이 있지 않는 한 정통 다이닝이나 퀴진 같은 실험적이고 셰프만의 시그니쳐 디쉬를 대중화하기에는 말이죠.”

사람들은 보통 음식을 먹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뒤에서 고생하고 접시에 요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깡그리 덮어둔 채 싸고 맛있는 곳을 찾기에만 혈안이다. 이승언 셰프는 이런 전체적인 미식에 대한 관념이 바뀌지 않는 한 정통 유럽식이나 서양의 앞선 요리 문화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고 거듭 말했다.

전쟁 이후 고달팠던 시절의 상처로 생긴 타협의 결실인 이런 ‘합리적인(?) 소비’ 문화는 더 이상 큰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끝없는 도전은 요리사만의 그것으로 남겨두면 안된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대중 탓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유럽에서는 소고기 스테이크 위에 튀긴 개미를 올려 먹고, 그런 다이닝이나 셰프가 유명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아직까지도 다이닝이란, 정찬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지돼지 못한 거죠.” 그래서 그는 그의 실험적인 요리에 대한 열망은 시장이 잘 익을 동안 독에 깊이 묻어둘 참이다.

“저는 당분간 대중에게 제 요리를 쉽게 어필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거에요.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요리를 인정받는 때가 오겠죠. 하지만 아무리 대중적인 인지도를 위한다고 하더라도, 키친에서만큼은 정찬(正餐) 이상의 노력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간단해 보이는 메뉴라도 준비과정만큼은 절대 쉽게 하지 않을거에요. 만약 과정을 알게 된다면 놀랄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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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주얼은 대중적, 준비과정은 예술로 간다

테이블에 올려지는 메뉴의 모습들은 일반 시카고 피자와 다를 바 없을 수도 있지만 그 만들어지는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현재 홍대와 이태원(곧 강남에서도)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메뉴에는 다이닝 이상의 미장(준비과정)이 포함된다. “국내산 암돼지를 4시간 이상 브레이징하고 하루 이상 마리네이딩 하는 것은 기본이죠. 준비과정이 예술적이라면 대중들도 나중에는 먹었던 음식에 대한 생각이 바뀌리라 믿고 있어요.”

이런 과정은 냉동 재료와 캔으로 만들어진 소스들을 사용하는 곳에서는 거부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래서 현재 [시카고 피자] 키친에는 기본기가 탄탄한 요리사들로 북적인다. “기본기가 없으면 백날 유학 갔다 와도 버티지 못합니다. 저도 악착 같이 유학 실패를 뛰어넘고자 움직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유학을 다녀온 셰프들이 어떤 메뉴를 이야기하면 그것에 관련된 모든 서적과 그 학교에서 교재로 가르치던 책들을 모두 봤습니다.” 오기와 콤플렉스로 시작된 요리 공부였지만 지금은 그 과정이 그의 밑천이 됐다.

어느 정도 업장 경력이 생기고 나서야 그는 유학을 고려하는 후배 요리사들에게 독기 없이 말한다. “한국 시장에는 해외 유학 경험을 오롯이 담을 만한 업장이 많지가 않아요. 그래서 전 나갔으면 그곳에서 일하고, 다시 들어오지 말라고 말하죠.” 나가서 어렵게 배운 것들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국내사정을 아쉬워하지 말고 현지에서 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다. 그는 또 “요리사들끼리 서로를 배척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이제는 이 셰프 자신도 다른 업장에서 완전히 다른 분야의 요리를 하는 셰프들과 거리낌 없음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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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니스를 위한 타협, 필요한가?

비즈니스 셰프라면 누구나, 그렇다 누구나 고민하는 일이 보스와의 매끄러운 관계 맺기이리라. 경제적인 고려를 해야 하는 오너들은 최고의 효율을 얻기 위해 헤드 셰프의 도움을 구한다. 그 과정이 인간적이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셰프들은 맥이 풀린다.

“지금 대표는 처음에 같이 할 생각도 없던 저를 여러 번 찾아와 설득했어요. 제가 블로그를했었는데 제 콘텐츠를 이미 전부 파악하고 있더라고요. 글만 3000개? 정도 되는 꽤 많은 양을 말이죠. 젊은 친구이지만, 알수록 속이 깊어요. 파인 다이닝을 추구하는 제가 피자를 만들면서 대중적인 시도를 하는 이유도 지금 대표와 뜻이 통했기 때문이죠.” 현재는 홍대와 이태원 외에도 강남점을 새롭게 오픈하면서 더 바빠진 이들이다. 종종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의견 차이도 느끼지만, 그래도 둘만의 궁합을 맞추는 방법도 찾은 듯 보였다.

기술자라고 표현하면 서글플까? 셰프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와는 별개로 이 셰프는 기술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요리사들이 손기술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다 보면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사장 위에 앉으려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자본 위에 기술이 올라 설 수 없다고 봐요. 결국 자존심과 고집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해요” 그러면서 그는 그 과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보통 요리사들이 신메뉴를 개발하기 전, 유명한 요리 책을 보고 메뉴와 레시피를 먼저 확인한다. 하지만 그는 “오너를 먼저 찾아갑니다. 그리고 오너한테 물어보죠. 영감을 느낄 수 있는 색, 음악, 시간대 등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을 통해 조합된 의견으로 메뉴를 만듭니다”라고 말한다. 업장의 정체성이 될 메뉴를 정하는데 오너십과의 대화나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그는 “오마쥬라고 속이는 ‘메뉴 베끼기’는 안되죠. 앞으로 시그니쳐 디쉬를 보유한 요리사들이 꾸준히 나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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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피자는 홍대에서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고, 이어 이태원점과 강남점을 잇따라 오픈 해 주목받고 있다. 이승언 셰프는 시카고 피자의 메뉴와 테이블 세팅까지 두루 관여하면서 많은 손님들에게 높은 수준의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About 이 인규

이 인규
'미식에는 층위가 없다. 단지 아직 느끼지 못한 음식이 있을 뿐.' 이래 생각합니다. 비록 글로 배운 음식문화이지만, 혀로 배우고 사색하기 시작하면서 그 한계를 넘고자 합니다. 나에게 있어 한계는 맛을 표현하는 글인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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