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의 탄생] 최초의 레스토랑의 모습은 어땠을까?

| 1760년대 레스토랑의 모습

유럽 레스토랑의 역사는 사람들이 배를 곯지 않게 되면서, 또는 배고프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이 제대로 먹지 못하던 1760년 무렵, 파리의 대중음식점에서 배가 부를 정도로 잔뜩 먹는 것은 엘리트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았다. 자신의 체면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예민하다. 그래서 많은 양을 소화하지 못하고 아주 적게 먹는데, 대신에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먹었다. 이런 상류층 고객은 호화로운 가구로 장식된 새로운 레스토랑에서 유형의 레스토랑에 마음이 끌렸다. 레스토랑 벽면에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며 감탄할 수 있는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도자기 그릇에 담긴 원기를 회복시키는 부용Bouillon(육류, 생선, 채소, 향신료를 넣고 끓여서 맑게 우려낸 육수. 수프를 만들때 기본이 된다.)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새로 생긴 레스토랑들은 가게 이름에 부용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닭고기나 야생 동물, 소고기를 넣어 요리한 부용은 다른 음식을 먹기에 너무 예민한 사람들의 원기를 북돋워 줄 음식이었다.

그러나 레스토랑이 성공한 결정적인 요인은 부용이 아니다. 그보다는 개인과 그들의 욕구에 집중한 덕분이었다. 당시의 일반적인 음식점들과는 달리 레스토랑에서는 긴 테이블에 온갖 낯선 사람들과 나란히 앉을 필요가 없었다. 레스토랑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을 정해서 찾아가서, 원하는 음식을 메뉴판에서 고를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전국의 국민 의회 대표들은 파리에 모였고,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했다. 파리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행에 맞게 새로운 이름을 붙인 레스토랑들이 생겨났다. 본보기가 된 레스토랑들보다는 음식 값이 저렴하고 덜 고급스러운 곳들이었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길드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요식업자들은 손님들의 세분화된 욕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다. 서비스는 처음부터 레스토랑의 성공에 굉장히 중요했다.

 

| 1800년대 레스토랑의 모습

표면적으로 볼 때 파리의 초기 레스토랑은 시민 계층의 여론이 형성된 카페와 비슷했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만나 토론하고 논쟁을 벌였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교회나 궁정에서와는 달랐고, 엘리트들의 살롱과 아카데미, 또는 교양있는 계층의 사교 모임과도 달랐다. 자기가 마실 음료나 음식 값만 지불할 수 있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고, 자유롭게 대화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카페 안에는 신문들이 구비돼 있었고, 신문은 별다른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공급했다. 토론에 개입해 논쟁을 끝내고, 지시를 내리는 권위자는 없었다. 분쟁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이성이 승리하고 결론이 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레스토랑은 카페와는 다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토론하려고 레스토랑에 가지는 않는다. 신문을 읽으려고 가는 것도 아니다. 레스토랑에 가는 이유는 원기를 회복하거나 자신의 예민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레스토랑의 테이블에 앉아 개인적인 선택을 한다. 그것은 중요한 정치 문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선택으로, 닭고기나 야생 동물, 소고기 부용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레스토랑에서는 공과 사의 저울이 사적인 쪽으로 기울어진다. 파리의 카페는 한눈에 보이는 넓은 공간을 제공한다. 그에 반해 레스토랑에는 벽 속에 묻힌 자리들이 있다. 단체 손님이나 연인들은 그런 자리로 들어가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은밀한 대화를 나누거나 낭만적이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위해 마련된 특실도 있다. 레스토랑은 시민 사회의 격렬한 논쟁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게다가 레스토랑에는 남녀가 함께 등장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적어도 1800년 무렵 프랑스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이례적인 점이었다. 그들은 놀라워하면서 그 일을 이야기했다.

| 18세기 후반 파리의 레스토랑과 비평의 시작

18세기 후반 파리의 레스토랑에서는 부용이 아닌 다른 음식들의 냄새가 더 많이 나기 시작했다. 닭고기와 마카로니, 콩포트compote(과일을 설탕에 넣어 천천히 졸인 디저트 음식)와 크림, 계란과 잼 들이었다. 베리Véry형제의 레스토랑은 굴 요리를 전문으로 만들었다. 카페 하디Café Hardy는 구이 요리로 명성을 얻었다. 레트루아 프레르 프로방소Les trois Frères Provençaux는 남프랑스 요리 전문 레스토랑으로 부야베스bouillabaisse(프랑스 남부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생선이나 해산물을 원료로 야채와 향신료를 넣고 끓인 지중해 식 수프의 일종 )를 파리에 소개했고, 크림 대신 올리브유로 요리했다. 이런 새로운 음식점 유형은 19세기 초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다만 파리를 제외한 프랑스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제 레스토랑 비평도 시작되었다. 유명한 미식가로 알려진 알렉상드르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Alexandre Balthazar Laurent Grimod de La Reynière가 『미식가 연감Almanach des Gourmands』을 발표했다. 이 연감은 19세기 초에 정기적으로 발행되었고, 그리모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전에도 음식에 관한 책을 쓰는 저자들은 있었다. 그러나 오직 미식에만 집중해 먹는 사람과 요리사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묘사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일이었다.

 

Editor’s Note : 독일 출신의 문화사회학자인 크리스토프 리바트의 신간 <레스토랑에서>. 레스토랑이라는 현대적 공간이 빚어내는 다층적 풍경을 조망한다. 리바트는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미식의 문화가 싹 트고 꽃을 피운 과정을 조목조목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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