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최고 리조트의 수셰프가 되기까지” 김성훈 셰프의 비움의 철학

타국에서 한 달 5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시작해 중동 최고의 리조트 아틀란티스 더 팜Atlantis the palm 두바이의 레스토랑 수 셰프가 되기까지 오로지 맨손으로 실력을 쌓았다. 한식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낮선 이국 땅 두바이에서 한식을 꽃피우고, 경쟁 호텔에서 러브콜을 보내 올 만큼 입지도 다졌지만 아직도 남아야 할 이유가 많다. 셰프로서 걸어온 날보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더 멀지 않은가. 더 큰 가능성을 향한 태양은 오늘도 떠오르기에 재촉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아틀란티스 더 팜 두바이의 뷔페 레스토랑 사프란Saffron의 스페셜리티수 셰프Speciality Sous Chef 김성훈이다.

한국에 정착했다면, 서울 어딘가에서 꽤 잘나가는 셰프로 어깨에 힘 좀 줬을 텐데. 험한 길을 자처해 해외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가 속한 아틀란티스 더 팜 두바이의 3000명 직원 중 한국인은 단 3명 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며 머릿속엔 온통 요리 생각으로 가득하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손님을 맞이하며 쌓아온 내공은 쉽게 쌓이지 않았을 터. 해외에서 본 한식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그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현 조리업계를 대변하는 Y 제너레이션 2005년, 한창 붐이 일던 해외 인턴쉽에 참가했던 젊은 청년이 있다. 군대 취사병이던 시절 함께 하던 동기들과 해외에 나가 셰프가 되고자 꿈을 키웠고, 미련 없이 호텔조리과를 중퇴하고 제대하자마자 해외 인턴쉽에 몸을 실었다.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Y 제너레이션, 김성훈 셰프의 이야기다.

‘굳이 한국을 두고 왜?’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김 셰프와 같은 세대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우선 풀어보자. 현재 주방에서 주축이 돼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셰프들은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소위 Y세대다. 당시에는 조리과가 포화상태여서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졸업생에 비해 호텔 취업문은 좁았고 처우는 열악했다. 해외에서는 트렌디 한 조리법과 미쉐린의 열풍, 셰프의 인기가 한국에도 조금씩 전해지는 한편 국내에서는 프랜차이즈와 패밀리 레스토랑 일색이던 외식시장이 절정에 이르러 새로운 시장에 대한 갈증으로 파인 다이닝이 조금씩 움틀 무렵이었다. 또한 조리유학이 붐을 이뤘고 해외의 경력을 쌓고 귀국한 사람들이 주축이 돼 조리 트렌드와 셰프의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 백지(白紙)가 되다, 처음은 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그에게 해외 유명 셰프의 명성은 도전해보고 싶은 목표가 됐다. 청춘의 푸른 꿈을 품고 미국 최대 규모의 카지노 호텔인 모히건 선카지노 호텔을 시작으로 아랍에미리트의 Intercontinental Abu Dhabi 호텔에서 룸서비스, 연회 주방의 체계를 배웠다. 이 때 뷔페, 연회, 룸서비스를 돌며 접한 경험이 훗날 그의 지경을 넓히는 토대가 됐다. 2년을 해외에서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취업했지만 장기 알바, 계약직 등 정규직을 향한 기약없는 기다림과 정체된 한국 호텔의 모순에 염증을 느껴 다시 해외로 나갈 준비를 했다. 토플 시험을 치르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조지 브라운 컬리지에 입학했지만 목표는 졸업이 아닌, 주방에서 다시 칼을 잡는 것이었다.

생활정보지에 나오는 일자리를 뒤져 한인식당에 들어가 전공도 경력도 다 내려놓고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묵묵히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칼도, 불도 다루게 됐고 이런 그의 성실함과 실력을 눈여겨보던 오너가 지인이 개업하는 스시 레스토랑을 소개해줬다. 모미즈라는 스시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일을 하며 악착같이 일을 배웠다. 그러던 중 1학년 1학기 방학 기간에 열린 잡 페어에 참가했는데 포시즌스, 트럼프 인터내셔널, CN타워, 샹그릴라, 파크 하얏트 등 굴지의 호텔들이 한꺼번에 러브콜을 보내왔다. 이후 파크 하얏트 토론토에서 일 년 넘게 근무하며 트럼프 인터내셔널에 입사 제안도 받았지만 캐나다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으로 파크 하얏트에 남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바쳐 근무했던 호텔에서 취업 연장은 이뤄지지 않았고 배신감과 상실감에 무기력한 날을 보내야 했다.

뜻하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초심으로 돌아가 재기의 발판을 다지려고 신발 끈을 고쳐 맸다. 캐나다에서 랭킹 2위를 기록하는 노타베네NOTA BENE 레스토랑에서 1주일에 2~3일을 무급으로 일하며 레스토랑 오리진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기도 한 헤드 셰프 클라우디오의 눈에 띄었고, 그가 오픈하는 퓨전 씨푸드 바인 RAW BAR에서 셰프 수업을 받으며 본격적인 실력을 쌓았다. 이후 헐리우드의 유명 레스토랑 소호하우스의 분점 소호하우스 토론토에서 프랩, 샐러드, 애피타이저, 라이스 & 파스타, 소테, 그릴 파트를 차근히 밟아가며 입지를 다졌고,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수셰프로 발탁돼 연회, 뷔페, 룸서비스, 아시안 퀴진을 책임지게 됐다.

“한국의 전형적인 기업문화와 비교해 볼 때 외국은 잘할수록 기회가 많은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고 봅니다. 나이나 학벌에 따라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닌 철저히 실력에 의한 기회의 분배가 이뤄지니까요.”

아틀란티스 더 팜 두바이

 

| 한국인 스페셜리티 수 셰프, 한식의 전령사 되다

현재 김 셰프가 몸담고 있는 아틀란티스 더 팜 두바이 호텔은 중동 최대의 리조트로 식음업장만 21곳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유일한 한국인 스페셜리티 수 셰프로서 특별히 뷔페 레스토랑 사프란에서 한국 음식을 책임진다. 레시피 개발, 기술 지도, 푸드 테이스팅, 기물업체 선정, 식재료 주문, 액션 플랜, 문서 작업 등 하는 일도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한식을 선보인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어디 한식뿐이랴. 일식, 샐러드, 서양요리, 중식 등 뷔페 레스토랑의 셰프라면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 중에서도 한식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김치를 응용한 타코, 퀘사디아, 버거를 선보여 흥행을 기록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강남스타일 버거를 신메뉴로 선보였다. 김치나 홍어와 같은 전형적인 한국음식도 소개하고 싶지만 발효음식이 많은 한식의 특성상 한계가 있다. 두바이는 한여름 낮 기온이 5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나라이므로 식품위생이 철저하게 이뤄져 상온에 4시간 이상 꺼내놓은 음식은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뷔페레스토랑 사프란에서 선보이는 한식

 

| 세계인이 보는 한식에 대한 재발견

한식 세계화를 주도한 정부 입장에서 널리 홍보하고자 하는 한식은 불고기, 비빔밥, 떡볶이 등이지만 김 셰프가 즐겨하는 한식은 조금 다르다. 시각적인 효과까지 덤으로 얻는 코리안 BBQ, 북엇국과 같은 맑은 국, 김치찌개는 너무 강하지 않게, 비빔밥은 한 스쿱씩 소분해서 조식으로 제공한다. 그가 외국에서 흥행시킨 한식의 포인트는 밥, 국, 김치 등 반찬의 구분을 두지 않는 작은 포션의 원플레이트 음식이다. 특히 고객의 성향에 따라 요리스타일도 달리한다. 중국이나 필리핀 고객들은 한국 스타일의 한식을 좋아하지만 유럽 고객에게는 향신료를 적게 사용해 순화된 맛을 선보이고 있다. 두바이에서 한식의 흥행을 주도한 그가 한식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던 데는 뷔페와 연회를 오가며 쌓아온 내공과 일식, 퓨전, 비스트로 등 분야를 가리지 않은 다양한 경험이 도움이 됐다. 그래서 해외에서 한식 셰프로 성공하려면 한식만 알기보다 다른 나라의 요리의 특성도 두루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에서 바라보는 한식과 해외에서 보는 한식은 다릅니다. 따라서 한식을 받아들이는 고객이 거부감이 없도록 그들 요리의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요. 요리의 특성을 두루 알아야 하지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요리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령 미국의 케이준 푸드는 유명하지만 잠발라야나 검보 같은 요리는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한식이 아닌 현지 음식의 특성에 어울리는 한식을 매칭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한식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김성운 셰프가 선보인 김치를 응용한 김치 타코

 

| 해외에는 한식을 담당할 ‘한국인’ 셰프가 없다

한국의 주방에서 샐러드 파트에서만 20년인 사람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요리는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발전할 수 없지 않은가. 더 큰 가능성을 찾아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났기에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양한 분야의 요리를 스폰지처럼 흡수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호텔에 발을 들였을 때에도 뷔페나 연회주방에 배치돼 다양한 요리를 접했으며 어딜 가든 기본에 충실하려는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혈혈단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레 몸에 밴 위기극복 능력도 생겼다. 불만 있으면 풀을 뜯어서라도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비워내야 더 많이 담을 수 있듯 김성훈 셰프의 몸에 베인 비움의 철학이 그를 더욱 내딛게 만들었다. 시작은 언제나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했다. 캐나다의 한인 식당에서도,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든 노타베네 레스토랑에서도, 20명 중 가장 말단으로 들어가 서열 3위 자리인 셰프 디 파티에 오른 레드 피아노 비스트로에서도 굳이 실력 포장해 과시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를 원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셰프들이 많아진 만큼 전세계에서 한식 셰프를 원하는 호텔들은 많아요. 하지만 한식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셰프는 찾기 힘들지요. 게다가 한식 포지션을 갖고 있더라도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아요. 그들이 원하는 사람은 한식에 정통한 셰프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외국에서 한식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합니다. 영어는 당연하고 요리의 기본기를 갖추되 다양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라고 말입니다. 여전히 외국의 호스피탈리티 산업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이민자입니다. 호텔이 아닌 미쉐린 레스토랑에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이지요. 겉으로는 백인들이 관리자인 경우가 많아도 실제로 요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은 인도나 스리랑카 등 남미 출신 이민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요.

“한국 사람은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셰프로서 갖는 메리트가 있지만 언어적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면 결코 관리자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서양요리보다 동양요리에 강점을 가진 셰프, 특히 영어에 중국어까지 구사할 줄 안다면 기회는 더 많아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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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레스토랑은 91년 4월 창간,국내 유일의 호텔(산업)전문지 입니다. 호텔&리조트/레스토랑&컬리너리/카페&바 섹션으로 지면이 구성되어 국내외 숙박,식음료 산업에 대한 전문적인 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 www.hotelrestaurant.co.kr

2 comments

  1. 요리사는 천민층

    두바이 요리사 급여 월 400 미달러, 한국돈으로 50만원 ;;;;; 하루 일당이 아니다, 1달 26일정도 일하고 받는 급여다. (중동은 주 6일 근무제)

    중동에서 요리사는 불가측 천민 취급받는다. 육체적으로 일하는것을 가장 천하게 여기는 곳이 중동과 동남아다. 중동과 동남아는 철저한 계급제 사회다. 모두가 평등하지 않다. 사무직이 제일 급여가 높고 존경받는다. 반면 육체적으로 일하는 직업(제조업/서비스업)을 가장 천하게 여기고 급여도 형편없이 낮다.

    이게 요리사들의 현실적인 처우 ㅠㅠ 월 50만원 받고 중동에서 일하고 싶은 한국인 요리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청년들은 생존이 아닌 생활을 하고 싶은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최악의 직업 5위안에 항상 들어가는 요리사와 간호사. 그때문에 백인들은 요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학력 이민자들인 필리피노와 멕시칸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서비스 산업은 필리피노와 멕시칸이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까지 왔다. 약 97%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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