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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요리보다 공간에 어울리는 음식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이재훈 셰프의 이야기

 

팔레 드 고몽. 우리나라에 이만한 레스토랑이 몇 개나 있던가? 서현민 대표는 우리나라 10대 대목수 세 명을 포함 열여섯 명의 목공예 장인과 함께 2년 동안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파리에서도 보기 힘들다던 클래식한 감성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1만여 병의 와인과 후식으로 제공되는 커피도 특별하다. 국내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보유하고 있고, 바티칸에만 제공되는 원두를 맛볼 수도 있다. 특히 후식까지 완벽하게 내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폐실공포증을 이겨내며 비행기에 오르도록 했고 이틀간 노숙한 끝에 장인의 커피를 얻어 올 수 있었다. 1999년도, 이런 갖은 노력으로 팔레 드 고몽이 탄생했다. 그리고 부침이 심하기로 유명한 청담동에서 17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레스토랑의 인테리어와 기물 등이 새의 한쪽 날개라면 요리사의 음식과 홀 직원의 서비스는 다른 한쪽 날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셰프들은 두 가치가 균형을 이뤄야만 파인 다이닝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재훈 셰프는 팔레 드 고몽과 형제 격인 뚜또베네의 주방을 책임진다. 그는 공간과 어울리는 음식을 만드는 게 자신만의 시그니쳐 디쉬를 개발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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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뚜또베네를 시작으로 서현민 대표와 함께 한 것으로 안다. 박찬일 셰프와 인연도 이때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 어떤 각오로 일을 시작했나?
A 팔레 드 고몽 오픈 후 2007년도에 뚜또베네를 열었다. 나는 박찬일 셰프와 함께 뚜또베네 오픈 멤버로 참여했다. 뚜또베네의 음식을 정통 이탈리안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무국적 음식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이탈리아의 오리지널리티라고 할 만한 부분은 테이블에 피클을 올리지 않는 정도? 박찬일 선배와 결정한 것이었다. 나는 좀 더 우리에게 이미 길들어진 입맛에 맞춰가길 바랐지만,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갖가지 피클을 시도하다가 알타리 무로 만든 피클을 낸다.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다.
뚜또베네는 새로운 메뉴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이탈리안 음식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돼지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나 명란 파스타도 여기서 제일 먼저 시작했다. 돼지 내장으로 직접 소시지를 만들고 베이컨, 바깔라 등을 만들려고 재료를 직접 건조 숙성시키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다 그렇게 만드니까 우리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Q 3년 전부터 두 곳을 책임진다. 언뜻 보기에는 프랑스 음식과 이탈리아 음식을 동시에 총괄한다는 게 쉬울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A 서현민 대표님과의 관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단순히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는 아니다. 뚜또베네에서 일하며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용을 얻었다. 한식이나 프렌치, 이탈리안, 일식 등 모든 요리의 끝은 같다. 제철 음식을 가장 맛있게 표현하는 거다. 비싼 가격을 받으려면 고객이 수긍할 수 있는 재료를 써야 한다. 레스토랑을 찾는 고객이 원하는 수준의 음식을 내면 된다.

Q본인의 요리에는 자신의 성격이 담길 수 밖에 없다고들 하는데, 자신의 요리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나는 대단한 해외 레스토랑에서의 경력이 없다. 소위 ‘일을 쳐낸다’라고 말하는 직장에서 일한 게 전부다. 메뉴를 쳐낸다. 또는 뽑는다고 말하는 곳이다. 이제는 그런 공간에서 요리사의 실력이 늘 수는 없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주방에서건 자신만의 색을 표현할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나만의 음식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 만은 아니다. 모순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음식은 공간을 빛내주는 역할 즉, 주인공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손님, 음식, 서비스, 요리사 이게 전부 한 공간에서 어우러져야 빛이 난다. 레스토랑 공간이 연극무대라면 다른 요소는 조연 또는 주연이다. 음식이 항상 주연일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접근해야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요리가 최고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른 허점이 반드시 생기게 되어 있다. 나만의 요리세계에 갇히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Q독창적인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맹목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에 상반되는 지적인 것 같다. 공간에 어울리는 음식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A 말했지만, 공간과 어울리는 음식을 만든다는 건 쉽지 않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고객 대부분은 기념일을 우아하게 보내기 위해 고몽을 찾는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이 음식만을 위해 방문하지는 않는다. 요리사로서 실험적인 메뉴를 만들어 보고 싶지만, 동시에 대중적인 입맛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미식가의 까다로운 기준과 대중이 원하는 친숙한 맛 모두를 잡아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Q 매체 인터뷰는 거의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A 나도 그렇지만, 고몽. 여기가 갖고 있는 고유의 색이다. 굳이 외부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내실이 있다면 점차 알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다른 셰프와 친분도 많지 않은 편이다. 이 근처에 있는 요리사 몇 명과 얼고 지내는 정도가 전부다. 사석에서 술을 먹거나 별도의 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지도 않는다. 요리 책을 봐도 어떤 특정 레스토랑이나 셰프의 책을 보지 않고 시즌별 또는 지역별 음식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을 본다. 다른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도 극히 꺼리는 편이다. 아무래도 은연 중에 내 요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아닌가 생각한다.

Q 매체 인터뷰는 없어도 아바타 셰프에 출연한 걸 봤다. 지금처럼 발음도 좋고 제스처도 자연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비결이 있나? 혹시 방송체질 아닌가?
A 아니다. 아마 청담동에서 10년 정도 일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에게 음식을 설명하거나 단골 손님과 꾸준하게 관계를 이어가려면 대화 기술은 필수다. 평소 자연스러운 걸 좋아한다. 허례허식 없이 터놓고 말하길 원한다. 방송도 홍합탕에 소주 먹듯이 하면 된다. 근데 한 번 해보니 방송은 내가 계속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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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방송에서 별명이 청담동 살모사였다. 왜 그런 컨셉이 정해졌나? 주방에서 그만큼 엄격한가?
A 상사가 엄한 것은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폭력이 없어졌다는 요즘 군대에서도 유일하게 사격장에서는 폭력이 허가된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주방도 비슷하다. 위험한 곳이니 때리지는 않더라도 긴장할 정도의 압박은 필요하다. 물론 지금은 무섭기 보다는 부드럽다고 생각한다. 뚜또베네만 책임질 때는 무서운 편이었다. 당시에는 누가 나가더라도 내가 맡아서 하면 되니까 좀 험하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주방 두 곳을 책임진다. 내가 대신 일을 다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예전처럼 하면 안 된다.

Q 셰프의 태도가 후배 요리사의 경력에도 영향을 준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앞으로 주방에 발을 들일 후배 요리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후배가 요리사를 포기했을 때 누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사실 아무도 이익을 얻을 수 없다. 본인은 물론이고 식당도 손해다. 만약 당신의 요리를 먹고 싶어하는 고객이 있다면, 그 고객에게도 손해다. 나도 젊었을 때는 불만이 많았다.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이인 것 같다.
버티라고 말하고 싶다. 버티고 나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일이 힘들다는 거 안다. 밤 10시에 산처럼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본 사람은 안다. 구역질나고 힘들다. 접시에 낀 기름 때를 벗기려면 뜨거운 물로 설거지 해야 한다. 화상 당하기 딱 좋다. 안다. 칼도 많고 뜨거운 화로도 있고. 다 안다. 그래도 버텨봐라. 좋은 평가를 얻는 날이 올 거다.

Q 해외 경력이 필수인 시대다. 어디서 어떤 일을 했었나?
A 난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해외 경험도 없다. 한국에 있는 ICIF분교에 다니다가 이탈리아로 가서 짧게 일한 경력이 해외 경력의 전부다. 이탈리아 가기 전에는 해태에서 일했고, 한국식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쏘렌토에서 일했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식재료의 대부분을 본사에서 제공한다. 소스며 면이며 고기 등. 버섯이나 양파 정도만 썰면 된다. 딱 1년 채우고 나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10년 뒤 누가 나와 함께 일하려고 할까?’ 이 고민을 좀 더 일찍 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이 든 건 이미 결혼을 하고 난 뒤였다. 모험을 선택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은 시기였다. 그런데 와이프가 흔쾌히 허락했다. 이탈리아 가서 제대로 배워오라는 거다.
우선 우리나라에 있는 분교에서 공부를 했다. 거기서 마련한 현지 커리큘럼을 통해 일도 해보고 현지의 음식을 경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기 직전 기수부터 현지 스타지를 할 수 없게 됐다. 나는 이런 사정을 현지에 가고 나서야 알았다. 막막했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너무 억울했다. 겨우 일을 구할 수 있었다. 다만, 거기서 오랫동안 일을 배우지는 못했다.

Q 당시에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유학을 고려하고 있는 후배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 있을 것 같다.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A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란다. 얼마 전 국내에 들어와 자리잡은 박무현 셰프가 좋은 케이스다. 요즘에는 해외에서 많이 일하고 돌아오는 친구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이재훈 요리사의 생각은 명확하다. 묵묵히 일하며 기다리면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와 명성이 아닐지라도 숙련된 노동자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About 이 인규

이 인규
'미식에는 층위가 없다. 단지 아직 느끼지 못한 음식이 있을 뿐.' 이래 생각합니다. 비록 글로 배운 음식문화이지만, 혀로 배우고 사색하기 시작하면서 그 한계를 넘고자 합니다. 나에게 있어 한계는 맛을 표현하는 글인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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