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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란 직업의 고뇌

뭐 알고는 있겠지만, 요리사란 직업을 선택하는 건 마치 ‘지들이 좋아서 하는 결혼이니 말릴 수 없어’ 같은 거다. 고난의 시기가 무수히 닥쳐올 것이고, 돈 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우며, 하루 종일 식당에 시간을 바쳐야 하는 직업인 까닭이다.

내 주방에 간혹 요리를 배우겠다고 오는 친구들이 있다. 이메일이나 한 다리 건너 지인의 소개로 그런 의문(그들은 의문보다 강한 희망에 차있는 경우가 더 많다)을 내게 전한다. 과연 요리란 할 만한 건가요. 물론 나는 ‘앱소올루~틀리 노!’라고 대답해 준다. 자, 우리가 무슨 공익도 아닌데 남들 다 쉬는 날 일해야 한다(그렇다고 휴일 수당 같은 건 개가 파 다듬는 소리라는 것도 아시겠지). 근로기준법에서 사악한(?) 존재처럼 보이는 연장근로와 야간근로는 당연한 일이다. 노동자 천국인 서양에서도 그러니 으레 전 세계의 식당 노동자들은 그런 줄 알고 지낸다. 주간 32시간 근무를 하는 독일에서도 요리사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주당 70~80시간을 일한다. 오직 최고의 셰프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는 탓에 그런 노동환경을 자청하고 있다.

요리사란, 다른 직업도 그렇지만 ‘일만 시간의 법칙’이 여지없이 적용되는 곳이다. 중뿔난 재주가 있더라도 남들보다 매일 한두 시간 적게 일하면 1년, 2년이 지나면 기술적 차이가 난다. 그래서 그런 가혹한 노동조건이 오히려 요리사의 미래를 담보하는 구석이 있다. 어느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소위 말하는 ‘별 달린 식당’의 요리사들은 으레 그렇게 일하는 줄 안다.

“저, 셰프님. 노동법에 따라 이번 주에는 40시간만 일할게요. 참, 지금 끝날 시간이네요.”

하고서 막 22개의 접시가 몰려 나가는 오후 8시에 앞치마를 벗을 요리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고(나조차 노동자다), 지지한다. 나도 그렇고, 내 자식도, 내 손자도 결국은 노동자가 될 것이므로. 게다가 내가 떼돈을 벌어 자본가 대열에 설 가능성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나의 계급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러나 요리사의 그런 가혹한 노동환경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중적이라고 비난해도 좋다. 일급 요리사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이런 가혹한 환경을 거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저는 요리를 책으로 배웠어요, 이건 마치 임신출산백과를 보고서 애를 낳아봤다고 우기는 것과 같은 소리다). 이런 이율배반을 내가 긍정하는 것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앞서 거론한 일주일 40시간 미만 노동이 정착된 서방국가의 유명 식당은 월급도 받지 않고 일하겠다는 요리사가 줄을 선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은 타산 구조가 매우 나쁘다.

충분한 서비스 인력과 최고급 재료, 장식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이 악화된 구조를 떠받치는 것이 바로 주방과 홀의 인턴십 직원들이다. 내 후배 안경석은 밀라노의 투 스타에서 일하는데, 자기 돈으로 700유로나 하는 방세를 지불하며 그 도시에서 버티고 있다. 미구에 월급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의 수입은 ‘0’이다. 그래도 어떤 불만이 없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훈련받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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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노동환경이 나쁘면 개선하는 게 당연하고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법에 의거해 주어야 하는 게 맞다. 노동자가 안 받겠다고 해서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불법이다. 그러나 법과 현실의 냉엄한 차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것은 외국의 예이다. 한국에서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법의 맹점 사이에서 실습생에게 겨우 교통비 정도를 지불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식 요리사를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한국 요리사의 노동환경이 좋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저 임금으로 시작하는 게 당연하며(치열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의 요리학과를 나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호텔은 계약직도 아닌 어정쩡한 단기 직원으로 보며, 인턴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똑같은’ 노동을 제공해야 한다. 보통 일반 식당은 신분은 정식일지언정, 언제 망할지 모르는 식당 환경 때문에 노동조건이 불안한 건 진배없다. 그래서 어떤 친구의 이력서를 보면 불과 7년의 경력에 십수 개의 매장 이름이 적혀 있기도 하다. 사장이 월급을 안 줘서, 노동 강도가 너무 세서, 배울 게 없어서, 심지어 가게가 망해서….

도시 노동자의 평균 급여가 최근의 경우 350여 만원이라고 하는데, 요리사가 이 정도 월급을 받는다는 건 주방장급이다. 주방장이라고 해서 안정된 직장이 되는 건 아니다. 망하면 언제든 프라이팬을 내려 놓아야 하고, 새로운 자리는 여간해서는 구하기 어렵다. 빌 버포드가 쓴 걸작 [앗 뜨거워]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요리사란 ‘남이 놀 때 일하고, 남이 더 놀 수 있도록, 그 일을 해서 번 돈으로는 사 먹지도 못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나는 요리사로 전직하면서 중요한 이유 한 가지를 들었다. 회사와 달리 정년이 없는 직업이라는 인식. 그런데 그게 꼭 맞지도 않는다. 내 나이 마흔일곱인데 눈이 점점 나빠져서 재료를 썰고 다듬는 일이 결코 만만치는 않다고 느낀다. 아하, 그래서 나이 예순 일흔 된 요리사들을 찾아보기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깨닫고 마는 것이다.

요리사의 열정과 꿈을 안고 사는 예비 직업인과 현역인 주니어들에게는 참 못할 말들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도 있다는 걸 외면만 할 수도 없어 이렇게 적고 만다. 어쨌든 힘들 내시게.

About 박 찬일

박 찬일
월간지 기자로 일하다 이탈리아로 건너가 ICIF에서‘요리와 양조’과정을, 슬로푸드 로마지부에서 소믈리에 코스를 마쳤다. 시칠리아 ‘파토리아델레토리’레스토랑에서 현장 요리 수업을 거쳤으며 2002년 귀국해 ‘뚜또베네’, ‘논나’, ‘라 꼼마’를 거쳐 현재 서교동 ‘몽로’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와인스캔들], [보통날의 파스타],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가 있으며 각종 매체에 음식과 와인에 관한 칼럼을 활발하게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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