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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토닉씨의 파리 식문화 가이드] 가스트로-비스트로 역사의 서막

한식재단

Editor’s Note: <파리에는 요리사가 있다>에는 미쉐린 별을 받은 비싼 레스토랑이 아닌, 진정으로 요리를 잘하는 요리사들이 선보이는 수준급 식당이 소개되어 있다. 부산에 있는 레스토랑 메르씨엘의 윤화영 셰프와 박현진 대표는 십수년간 파리에 머물면서 이 책에 담길 레스토랑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책은 식당 추천뿐만 아니라 프랑스 요리사의 계보, 푸아그라와 생선 등 식재료에 대한 설명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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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르꼬르동블루에 다닐 때, 미국인 친구들이 종종 강한 미국 악센트로 ‘비스츄로우 더 룰레트’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내 머릿속에는 러시안룰렛이 떠오르면서 왠지 마피아들이 보드카에 캐비아를 먹고 있는 음침한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시간이 흘러 이 책에 실릴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남편이 “가스트로-비스트로를 이야기하는데 바라칸Baracane을 뺄 수는 없지! 근데 아마 이름이 비스트로 드 룰레트로 바뀌었다지~” 하는 것이다.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앗, 그 마피아 식당!” 조그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좁게 일렬로 배치된 작은 테이블들과 옛날 사진들, 그리고 옛 광고 포스터들이 작지만 단정하고 깔끔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러시아 마피아 보다는 조용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장과 닮은꼴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이 칠판에 쓰인 점심 메뉴 가격이었는데, 단품 메뉴 하나에 물 또는 와인 한 잔, 그리고 커피 한 잔까지 곁들인 점심 식사가 12유로다.
파리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가격대다. 그리고 푸아그라, 카술레, 오리 콩피 등 메뉴판을 가득 채운 남서부 음식들의 이름이 어서 맛보고 싶다는 식욕을 자극하였다. 생각해 보면 이런 면이 미국인들에게 호평을 받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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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의 주변 도시인 몽토방Montauban 출신의 오너 셰프 보디Marcel Baudis는 뒤투르니에1 와 성드렁스의 셰프 아래서 일을 하다가 1987년, 지금의 자리에 룰레트를 오픈하였다. 오늘날 유행하는 가스트로-비스트로의 시초가 된 세 곳 중 하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장사가 잘되다 보니 베르시Bercy 근처에 새로운 식당을 열어, 더욱 고급스러운 파인다이닝을 시도하였다. 그러면서 본점의 상호는 바라칸으로 개명하고 남서부 음식을 전면에 내걸게 된다. 사실 이 바라칸은 ‘오리 먹는 바’란 의미의 <바 아 카나르Bar a carnard>란 셰프의 농담에서 비롯되었는데, 무겁고 기름지다고 여겨지던 남서부 음식을 좀 더 모던하고 심플하게 바꾸면서 가격까지 합리적으로 낮추자 파리지앵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것이1992년의 일이다. 이 사건은 파리의 가스트로-비스트로를 촉진하는 기폭제로 작용하며, 93년 캉드보르드의 라 레갈라드의 등장을 예고하게 된다. 하지만, 셰프 보디는 벌써 20년째 이런 후발주자들의 가스트로-비스트로 흥망성쇠를 보아 오면서 사람들이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남서부 음식은 누구에게는 너무 빡빡하고, 누구에게는 너무 기름지고, 누구에게는 양이 너무 많아. 요즘 사람들 입에 착착 감기게 만들어야지!”라며 훈수를 둔다고 한다.

비스트로 드 룰레트는 예전부터 카술레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입에 착착 감기는 뜨끈한 카술레를 맛보고 싶다면 한 번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 카술레는 얼핏 보기에 쉽고 평범해 보이지만 콩의 익힘 정도를 맞추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란다. 제맛을 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여러 가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단 말씀!

남서부 음식을 얘기하면서 어찌 지비에를 빠뜨릴 수 있을까! 하지만, 요즈음에는 양질의 프랑스산 지비에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파리의 가스트로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이 헝가리, 오스트리아, 스코틀랜드에서 오는 냉동 지비에라고 하니 말 다하였다. 남편에게 물어보아도 예전에는 총 맞은 자국이 선명한 피투성이의 털 달린 ‘동물’이 주방으로 들어왔는데, 요즘은 진공포장 되어서 스티커까지 붙은 상품이 배달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 스티커에는 프랑스산이 아니라는 증거로 떡 하니 원산지 표시가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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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가 없어, 지비에를 맛보는 이유가 뭔데!” 하며 셰프 보디는 정색을 하며 말한다. 단지 메뉴판 구색을 맞추기 위한 지비에는 필요 없다는 얘기다. 지비에에 관한 셰프들의 의견은 분분하기 때문에 뭐라고 딱 잘라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런 태도들 이 프랑스 식자재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비에는 부르주아 문화이기 때문에 닭고기 요리를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만큼 과거에는 먹는 사람들도 적었고 먹을 수 있는 장소도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파리 시내에만 미쉐린 별 3개의 레스토랑이 아홉 개나 되고 너도나도 지비에를 맛보고 싶어하게 되어 여기저기서 지비에 메뉴를 갖추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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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랑스 내에서 사냥으로 잡을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고 그러다 보니 냉동 지비에의 수입도 많아지게 되었다. 이렇게 영하 80도의 초저온 급속 냉동을 하게 되면 1년 이상으로 유효기간이 늘어나게 되니 지비에 ‘시즌’이란 말도 우스워지게 된다. 그의 비판은 바로 이런 부분을 꼬집어 이야기한 것이다. 이 식당에 올 때마다 신기하였던 점은 테이블에 앉으면 언제나 여기저기서 영어가 들려 온다는 것이다. 사실 마레의 보주 광장Place des Vosges과 바스티유 사이에 있다는 입지 자체가 관광객을 부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인의 미식바이블인 <자갓 파리Zagat Paris>의 Top Food Rating에서 26점을 받아 르 콩투아3 와 함께 최고의 점수를 기록하였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마음으로 만드는 음식이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지! 그리고 요리사가 신이 나서 만들어야 좋은 음식인 거야. 간이 잘 맞고 제대로 익혔다면, 단순한 음식도 얼마나 맛있냐구!”

영어 메뉴판도 있고 영어 잘하는 서버가 늘 대기하고 있으니, 마레를 산책하면서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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