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파인 다이닝의 계보를 읽다 1] 파인 다이닝의 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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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 팜코트에서 바라본 황궁우. source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파인 다이닝을 우리말 그대로 해석하면 고급 식당이다. 고급 식당의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까? 우리는 그 기준을 음식의 맛, 서비스, 인테리어, 가격 정도에 두고 있지만 여기에도 엄연히 개인차가 존재한다. 누구와 같이 먹는지, 그날의 컨디션이 어떤지, 날씨는 어떤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도 평가가 다른 이유다.
그럼에도 파인 다이닝이라 선을 긋는 이유는 최상의 것을 경험하고픈 인간의 욕구에 있지 않을까? 과거에는 상위 1%만 넘을 수 있었던 문턱,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 우리나라 파인 다이닝의 근원, 수라상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나라 최초의 파인 다이닝은 궁중에서 시작됐다. 임금님이 드시던 진지, 수라상은 우리나라 팔도의 진미가 올라가는 그야말로 진수성찬인 셈이다. 상위 1%도 아닌, 1인자를 위한 상이니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역대 왕들이 어떤 수라상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전해지는 수라상차림은 한말 궁중의 수랏간(임금의 진지를 짓던 주방) 상궁들과 왕손들의 구전에 의해 전해진 조선 말기의 상차림인 것이다. 전파한 현대 궁중요리의 시조로 불리는 사람은 한희순(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1대 기능보유자) 상궁으로 고종, 순종, 윤비를 모신 조선시대 마지막 상궁이다. 이후 궁중요리는 한희순 상궁에서 황혜성, 염초애 선생으로 전수됐고 황혜성(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2대 기능보유자) 선생의 3녀 한복려(궁중음식연구원 원장), 한복선(한복선 식문화 연구원 원장), 한복진(전주대학교 전통음식문화과 교수)에 의해 현재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다.

|조선 최초의 요릿집, 혜천관과 명월관

그렇다면 파인 다이닝의 기준을 ‘외식’에 두고 생각해보자. 1906년 서린동에 개업한 국내 최초의 요릿집 혜천관이 있다. 흔히 말하는 기생집이 국내 파인 다이닝의 원조 격인 셈이다. 혜천관은 전통의 가락과 음식을 준비한 전문 요릿집이자 일류 사교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한편 을사늑약 이후 조선에 망운이 드리우면서 수랏간 숙수들이 궁 밖으로 내몰리게 되는데, 그들 중 궁중에서 요리와 연회를 담당했던 안순환이라는 사람이 1909년 지금의 세종로에 명월관을 차리면서 최초의 조선 요릿집이 탄생하게 된다. 안순환은 고종에게 바치던 수라상을 일반인에게 그대로 재현했다. 조선 최고의 진미를 선정해 교자상 방식을 처음 도입했고, 은으로 만든 식기며 겸상이 없는 궁중의례를 선보여 당대에는 충격적인 이슈가 됐다. 오로지 조선의 왕만이 누렸던 상을 받아보고자 당대 실세들이 문턱을 넘나들었다. 이후 명월관은 국내외 사람들이 모여드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며 불타버렸다.

1924년 

| 한국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 ‘팜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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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웨스틴조선호텔 1층에 자리한 나인스 게이트 그릴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파인 다이닝, ‘팜코트’의 후신이다. 팜코트는 1924년 조선호텔이 4층 건물일 때 문을 연 한국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일제 강점기 때 서양 문물이 밀려오면서 생겨난 이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어떻게 서양의 식재료를 공수했는지 알 수 없지만 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도 파인 다이닝의 품격을 유지할 만한 메뉴를 선보였다는 게 놀랍다.

최초에서 최고가 되다
파인 다이닝의 많은 변화는 팜코트로부터 시작됐다. 국내 최초로 선보인 프라임 립은 손수레에 실어 테이블 바로 옆에서 고객이 원하는 크기로 잘라서 제공됐는데, 육질을 높이기 위해 소에게 맥주를 먹이고 전문 안마사가 마사지하기도 했다고. 또한 에그 베네딕트, 시저 샐러드, 타르타르 스테이크, 달팽이 요리, 플랑베flambee(고기, 생선, 과자에 브랜디를 붓고 불을 붙여 조리는 요리)도 이곳에서 처음으로 선뵀다. 이후 팜코트는 1970년 들어 조선시대 서울의 네 개의 大門(사대문)과 네 개의 小門(사소문) 이외에 서울의 아홉 번째 문이라는 뜻의 ‘나인스 게이트’로, 2011년에 다시 ‘나인스 게이트 그릴’로 이름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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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스 게이트를 거쳐 간 사람들
나인스 게이트를 거쳐 간 역사적인 인물도 많다. 이승만 대통령, 독립운동가 서재필, 미국의 포드 대통령, 마릴린 먼로 등 거물급 인사들이 이곳을 들러 갔다. 이중 서재필이 1년간 묵었던 201호 방은 지금의 나인스 게이트 그릴 자리가 됐다. 특히 서재필을 기념하며 별실에 마련한 서재필 룸은 그의 사진과 독립신문 등이 전시돼 있었는데 예약이 많아 며칠씩 기다려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현재는 레스토랑 콘셉트가 바뀌면서 서재필 룸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

변하지 않는 시그니쳐 메뉴, 스테이크
시대가 변해도 이곳의 대표적인 메뉴는 스테이크로 변함이 없다. 현재의 나인스 게이트 그릴은 팜코트 시절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의 콘셉트로 출발해 퓨전을 접목한 세미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우드 파이어 그릴을 사용한 스테이크 하우스 그리고 프렌치 테크닉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컨템포러리 프렌치 아메리칸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스테이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인스 게이트 그릴의 전성규 수셰프Sous Chef는 나인스 게이트 그릴의 대표적인 메뉴로 양파 수프Onion Soup와 안심과 푸아그라Roasted Beef Tenderloin and Foie Gras를 꼽았다. 전 셰프는“프렌치 요리의 대표 메뉴인 푸아그라는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을, 화덕을 사용해 시어링 한 최상급 안심 스테이크는 부드러운 육질과 풍부한 육즙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양파 수프는 이곳의 오랜 시그니처 메뉴라고. 나인스 게이트 그릴의 손덕근 지배인은 “3대에 걸쳐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고객들 중에는 양파 수프의 맛을 잊지 못해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설명한다. 또 “6세 때부터 아버지 손잡고 드나들던 곳이라며 추억을 떠올리는 70대 고객도 있는가 하면, 1924년 조선호텔에서 결혼을 한 부부가 해마다 찾기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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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 한국 최초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 칸티나’

서울시 중구 을지로 1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있다. 길을 걷다가 무심하게 눈에 들어오는 검은색 바탕에 ‘La Cantina’라고 쓰여진 이 간판이 타임머신처럼 50여 년 전 과거의 입구로 안내한다. 라 칸티나의 이태훈 대표는 이곳의 4대 경영자이다. 1967년에 라 칸티나를 창업한 사람은 서울 모 대학의 교수였다. 이후 2대째 한 여성 경영인에 의해 운영되다가 3대째 이태훈 대표의 아버지 이재두 회장이 인수받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2013년 이재두 회장이 별세한 후로는 아들인 이태훈 대표가 현재까지 라 칸티나의 자리를 지켜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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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경영인 이재두 회장과 공동 인수한 벨라디 씨와 함께

핸드메이드, 정통 이탈리아 요리 선봬
라 칸티나가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서 명성을 갖게 된 것은 이재두 회장 때다. 1982년, 그는 내자호텔의 유일한 한국인 지배인이었는데 당시 총지배인이던 이탈리아계 미국인 벨라디 씨가 이 회장과 함께 라 칸티나를 공동 인수하게 됐다. 당시 내자호텔은 주한미군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으므로 서양 식재료 수급이 비교적 수월했다. 하지만 호텔을 나와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현지의 식재료를 조달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결국 치즈, 소시지, 훈제연어, 파스타 면 제조기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것을 핸드메이드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라 칸티나의 주방은 연구실을 방불케 했을 정도로 정통 이탈리아식의 메뉴에 열정을 쏟았다. 정통 이탈리아 요리 전문 주방장이 상주했으며 이탈리아 대사의 어머니, 이태리계 은행 지점장의 부인까지도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만드는데 힘을 보탰다. 정성이 닿았는지 고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이탈리아 현지에서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데 현지의 맛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칭찬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레스토랑은 정·재계 인사들로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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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의 공백, 고객의 애정에 마음이 동(動)하다.
5년 전,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8개월간의 긴 휴식을 가졌다. 1990년대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와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이 대표는 일에 큰 의미를 못 느꼈다. 그런 이 대표에게 전환점을 마련해준 계기가 바로 이 시기다. 리모델링을 위해 잠정 휴업에 들어갔는데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오는 것이다. “추억이 간직된 곳이니 바꾸지 말아 달라.”, “무엇이 문제인지 말하면 돕겠다.”며 찾아오는 손님까지. 이 대표는 그 때 라 칸티나가 나만이 아닌 모두에게 추억의 공간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구조를 바꾸려고도 했다. 그런데 고객들의 추억의 장소를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간판도 없이 한 달을 영업했다. 오픈한다는 소문도 내지 않았는데 오픈 전날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로 고객들의 성원이 대단했다. 뿐만 아니라 8개월의 공백기에도 1명을 제외한 모든 직원이 다시 돌아와 라 칸티나와 함께 해줬다. 최소 10년에서 30년 근속자가 상당수라니. 요즘 같은 외식업계 인력난에 꿈도 못꿔 볼 상황이다. 이 대표에게 라 칸티나의 고객과 직원은 강한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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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차 단골 고객이 대부분
라 칸티나의 고객들은 연령층이 높은 편이다. 엄마가 맞선을 본 장소에서 딸이 선보는 장소로, 첫 만남이 결혼까지 이어져 결혼기념일마다 찾아오기도 한다.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지만 오히려 문턱은 낮췄다. 좋은 음식을 덜 부담되게 제공하고자 한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려는 이 대표의 의지다. 예나 지금이나 거물급 정재계 인사들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이지만 이 대표에게는 모두가 소중한 고객이다. 국무총리라도 자리가 없으면 기다려야 하는, 그에게 고객은 그런 의미다.

1979년

| 한국 최초의 일식당, 벤케이에서 모모야마로

청와대가 내려다보이는 롯데호텔 38층에 일식당 모모야마가 있다. 롯데호텔에는 두 가지 콘셉트의 일식당이 있었는데 정통 일식의 벤케이와 캐주얼 다이닝 모모야마이다. 2003년 이 두 레스토랑을 통합할 때, 벤케이의 콘셉트는 그대로 살리고 이름은 모모야마를 사용해 현재의 모모야마가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일식당으로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였던 벤케이는 본래 일본의 레스토랑을 도입한 것인데, 일본인 조리장과 매니저가 파견돼 정통 가이세키 요리를 선보였다. 이후 일식당의 통합과 함께 명칭을 바꾸면서 롯데호텔만의 모던 재패니즈 레스토랑으로 재탄생한 것. 지하 1층에 있던 모모야마는 2007년 10월 1일 현재의 38층으로 자리를 옮겨 가면서 일식 파인 다이닝으로는 최고의인기를 누렸다. 모모야마는 가이세키 200년 전통의 레스토랑 다무라, 미슐랭 2스타를 획득한 긴자의 스시꼬와 각각 제휴를 맺어 가이세키와 스시카운트에 주력하며 현대적인 일식 레스토랑의 틀을 마련했다. 특히 호텔 최초로 120종에 달하는 사케와 일본 공인 사케 소믈리에를 보유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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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고객층, 세심한 서비스로 단골 고객 만들어
모모야마는 단골 고객이 70% 이상에 달할 정도로 고객층이 꾸준하다. 30~40대의 젊은 CEO나 프로모션 패키지를 이용하는 젊은 부부, 연예인, 기업 총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고객이 이곳을 찾는다. 김선희 총괄 매니저는 벤케이의 오픈 멤버로서 현재의 모모야마가 있기까지 힘을 보태온 장본인이다. 김 총괄 매니저는 당시를 회상하며 “2007년 지금 이곳으로 모모야마를 옮겨오기까지 벤치마킹을 하러 한 달에 두 번은 일본으로 출장을 다녔다.”며 “도쿄에서 교토로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그릇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다.”고 말했다. 고객에게는 편안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그녀이지만 자신에게만큼은 타협이 없다. 하루의 끝을 보내면서 오늘의 서비스가 최선이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고. 그런 김 총괄 매니저를 보고 찾아오는 고객도 많다. 故 정주영 회장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과 가수 조용필, 배우 안성기 등도 모두 김 총괄 매니저에게 서비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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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 한국 호텔 최초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폰테

다리를 의미하는 일폰테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문화적 교류라는 의미로 1987년 밀레니엄 서울힐튼에 오픈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는 국내 호텔에 처음 선보인 일폰테는 밀라노 출신 알레시 셰프를 초대 셰프로 밀라노풍의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내놓았다. 당시 파인 다이닝으로는 프렌치가 대세였기 때문에 호텔에도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없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기후, 풍습, 문화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금방 친숙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일폰테의 오픈 멤버인 홍석일 상무는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 “토마토를 기본으로 하는 건강한 음식”이라며 “현지에 가보면 체인 레스토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음식의 개성과 특색이 강한 나라가 이탈리아”라고 설명했다.

감동 서비스가 충성 고객을 낳아
당시 밀레니엄 서울힐튼에는 외국인 투숙객이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외국인 고객이 많았는데 일폰테를 찾는 고객 중 내국인의 비중이 60%에 달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주로 정재계 인사의 미팅, 비즈니스, 사교장소로 알려졌으며, 태국의 탁신 총리, 가수 존 덴버, 배우 스티븐 시걸, 셀린 디온, 히딩크 등 해외 유명 인사들의 방문도 끊이지 않았다. 홍 상무는 “할아버지,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방문하는 단골 고객들도 있다.”고 언급하며 “병문안을 갈 때 병원식이 아닌 호텔 조식을 준비해 간다든지, 장례식의 도우미를 자처해 호텔 서비스를 제공한 적도 있다.”며 인간적인 공감과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서비스를 고객의 감동을 이끌어 내는 비결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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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폰테,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허브
일폰테는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추구하는데, 10년간 일폰테를 이끈 아니타 비디니 셰프가 정년 퇴임 후, 지난해 그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은 임장환 세프가 바통을 이어받아 일폰테의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이탈리아 셰프라면 대다수가 일폰테를 거쳐 갔을 정도로 일폰테의 명성은 대단했다. 그만큼 일폰테는 당시 국내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허브라고 불렸다. 지금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많이 생겨났는데 일폰테를 벤치마킹하러 오는 고객도 많았다고.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손에 꼽던 시절, 일폰테의 이름처럼 양국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초기 파인 다이닝, 호텔 중심의 사교문화의 장
우리나라 초기 파인 다이닝의 특징은 주로 정재계 인사들과 해외 공관, 외국인 등 상류사회 사교문화의 장소였다는 점이다. 또한 재료 수급이용이하고 외국인을 비롯한 소비층이 집중된 공간인 호텔을 중심으로 생겨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때 파인 다이닝으로서 명성을 떨쳤던 우리나라의 요릿집, 요정(料亭)은 오늘 날 유흥음식점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파인 다이닝이라는 이슈에서도 멀어졌다. 다만 일부 전수돼 온 궁중요리로부터 한식의 맥을 잇는 작업이 근근이 이뤄지다가 정부가 추진하는 한식 세계화 바람에 힘입어 모던 한식, 뉴 코리안 퀴진 등으로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한편, 한국의 파인다이닝의 눈부신 성장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의 미식이 어떻게 발전돼 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외식업에 종사하고 우리 음식을 알리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다이닝 트렌드 못지않게 우리나라 다이닝의 뿌리를 찾는 것에 관심을 갖고 우리 것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외식종사자들이 고민해봐야 할 과제인 셈이다. 지금껏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시대의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파인 다이닝이 있다. 그들이 걸어왔던 길이 앞으로 펼쳐질 파인 다이닝 업계에 든든한 토대가 되기를 바라며, 역동적인 파인 다이닝 시장의 경쟁에서 100년, 200년 그 이상 빛나기를, 그들의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문헌 참고_ 한국음식대관(한국문화재보호재단 편, 한림출판사)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백과 한국 최초 조선 요릿집/명월관)2008, 한국콘텐츠진흥원
취재 협조_ 서울 웨스틴조선호텔(나인스 게이트 그릴), 라 칸티나, 롯데호텔(모모야마), 밀레니엄 서울힐튼(일폰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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