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는 기술직. 사회에 빨리 나올수록 유리하다” 박효남 명장과 함께 한 요리사 모임 힐링셰프

“나에게 은퇴란 없습니다. 38년 일했는데, 앞으로 38년 더 일할 생각으로 주방에 들어섭니다.”

중졸 학력, 3줄짜리 이력서로 하얏트 조리부에 입사, 5년 뒤 힐튼 호텔로 옮겨 지난 32년간 주방을 지킨 박효남 명장.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사 직함을 얻었고, 2006년에는 프랑스 농무무에서 수여하는 메리트 아그리콜을 받았다. 또한, 2012년에는 대한민국 요리 명장으로 선정됐으며, 지난해에는 숙련기술인 홍보대사로도 위촉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1979년부터 지금까지 프랑스 요리를 국내에 알린 선구자로 유명하다.

지난 24일 밤 요리사 모임인 ‘힐링셰프’에 박효남 명장이 방문했다. 박효남 명장은 이산호 셰프와 콜라보 시연 및 강연을 통해 자신의 요리 철학을 전달했다. 현재 그는 세종호텔과 세종 사이버 대학에서 총괄 셰프 및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셰프뉴스는 이날 행사 전에 박효남 명장을 만나 그의 요리 철학과 외식산업 현장에 필요한 조언을 들었다.

| “주방은 놀이터. 놀이터에 들어온 아이처럼 난 언제나 즐겁다.”

요리사라면 누구나 조리복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외출할 때도 조리복을 입는 요리사는 많지 않다. 박효남 명장은 하얀색 조리복을 그대로 입은 채 건물로 들어섰다. 웃으며 검지가 짧은 오른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박효남 명장과의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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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힐튼 호텔에 오랫동안 근무하셨는데, 몇 해 전 세종호텔로 옮기셨어요. 호텔과는 다른 생활을 하실 것 같은데요. 근황을 알려주세요.
A 세종 호텔과 세종 사이버대학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힐튼 호텔에서 이그젝티브 셰프Executive Chef까지 32년을 근무했는데, 새로운 삶을 위해 도전해봤습니다. 현재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은 20대에서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학교의 ‘배우면서 일을 한다’는 교육철학이 제가 가진 생각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했거든요. 좋은 제도죠. 저는 호텔에 3줄짜리 이력서를 가지고 들어왔지만, 끊임없이 공부해야 했거든요. 평생 공부. 당장 얻는 것보다는 길게 보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 세대가 학력을 추구하는 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특히 요리는 기술이거든요. 나는 능력이 좋은 사람이 우대받을 수 있는 능력 중심 사회를 꿈꿔요. 지금도 여전히 요리사는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을 해서 이런 점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면서 살고 있습니다.

Q 새로운 도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호텔 말고 아예 개인 레스토랑을 열 계획은 없었나요?
A 오너셰프. 해보고 싶었죠. 근데 우리나라 식문화 여건상 오너셰프는 많이 힘들어요. 젊은 친구들이 많이 하고 있는데, 다들 힘들다고 합니다. 요리라는 게 맛도 중요하지만, 경영을 얼마나 잘하는지도 중요하거든요. 내가 직접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에요. 오너가 아니어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거나, 업주의 눈치 때문에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도와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눈치가 보여서 못 배우겠다고 하는 요리사가 있다면 내가 그 업장을 찾아가서 메뉴 개발도 도와주고, 조언도 해주는 거죠. 그러면 업주 입장에서는 요리사 한 명 잘 뒀더니 나 같은 명장이 와서 도와준다고 좋아하더라고요. 내가 직접 오너 셰프가 되기보다는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이 더 어울린다고 봅니다.

Q 한 직업으로 38년간 묵묵히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중간에 요리사를 포기하고 싶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A 예전에 힐튼으로 옮기고 얼마 안 돼서 정말 요리사를 그만둘 생각도 했었어요. 보통 직급을 높이거나 연봉을 높일 수 있을 때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동급의 요리사로 힐튼으로 왔어요. 23살에 퍼스트 쿡. 원래는 셰프 드 빡띠로 올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거든요. 나이도 어리고 하니까. 근데 너무 힘이 들더라고요. 일보다는 사람 때문에. 그래서 당시 동아일보에 나온 ‘인력 채용’이라는 단어만 보고 무작정 일을 구하러 다른 직업을 구하러 가보기도 했어요.
당시 리모델링 전의 청계천 거리를 걸으면서 깨달은 것은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구나. 내가 웃음을 먼저 주지 않으면 상대방이 웃음을 주지 않는다. 이걸 깨달았어요. 그 이후 나는 하루에 10번을 마주치더라도 항상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요리사가 주방 밖에서는 사복을 입고 있어서 잘 못 알아볼 때가 있는데, 나는 (그 요리사를)못 알아보는 실수를 안 하도록 호텔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했죠. 결국, 내가 바뀌니까 문제도 해결되더라고요.

Q 내가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이 생각이 나네요. 그만큼 요리사는 서비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요리사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 있을까요?
A 돌아오는 접시를 확인할 정도로 요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 기술 등은 학교나 가정에서 다 배울 수 있어요. 근데 우리가 만든 음식을 손님이 어떻게 먹었는지, 왜 다 안 먹고 남겼는지 이런 것을 알고자 하는 관심은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정신없이 바쁜데 언제 일일이 그런 걸 다 보느냐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돌아온 접시를 보고서 내 담당인 요리, 예를 들면 내가 당근을 요리하는데 손님이 남겼다. 그러면 왜 남겼는지 포션이 큰지 작은지, 무르기는 어떤지 파악을 해야죠. 그래야 성장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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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서 명장님이 능력 중심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는데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학력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유럽과 비교해도 요리사의 첫 사회진출이 5년 이상 늦거든요.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A 물론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근데 이런 풍조가 부모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님의 의견을 무시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4년제 대학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많은 부모님이 내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내 자식이 어떻게 하면 요리사를 잘할 수 있겠냐?’ 그러면 나는 ‘조리 특성화 고등학교를 보내든지, 2년제 전문대학을 보내라’라고 조언합니다. 요리사는 기술직이기 때문에 사회에 빨리 나올수록 유리합니다. 저도 18살에 시작했거든요. 그러다가 38살에 이사를 다니까 사람들이 ‘무슨 38살에 이사야?’라고 했어요. 근데 당시에 저는 이미 20년 경력자였거든요. 빨리 시작할수록 좋습니다.

Q 그렇군요. 명장님이 요리를 시작할 때랑 지금은 많은 점이 달라진 게 사실인데요. 유학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A 나가서 배우고 오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겁니다. 요리 기술이라든지 사고의 폭이라든지. 근데 무슨 돈으로 갑니까?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잖아요. 여건이 맞아 학교에 들어가면야 좋겠죠. 내가 1987년에 호텔에서 처음으로 프랑스로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당시에 프랑스 레스토랑에는 한국인 요리사가 없었어요. 저 혼자였죠. 놀랐던 것은 우리나라 요리사는 없었어도 일본 요리사는 있더라는 겁니다. 가서 무보수로 요리를 배우고 문화를 익히는 중이었어요. 스타지라고 하죠. 그런 식으로 돈을 들이지 않고도 배울 방법이 있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배우고 오라고 말합니다. 이미 그렇게 다녀온 프렌치 레스토랑 오너 셰프도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이유석 셰프도 그렇고.

Q 명장님은 프랑스에서 활동하지 않으셨는데도 국내에서 가장 프렌치 요리를 잘하는 요리사로 이름도 알렸고, 프랑스 농무부에서 수여하는 상도 받으셨더군요. 프랑스의 이런 적극적인 식문화 홍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요리사로서는 처음으로 받았죠. 이후에도 없었고. 자랑이 아닌 게, 이 상은 프랑스의 마케팅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식문화를 누가 잘 알리고 있나 살펴본 다음에 상을 주는 거죠. 예를 들어 프랑스 음식을 만들 때 10가지 재료가 필요하다면 한두 가지는 반드시 프랑스의 식재료를 수입해서 써야 해요.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얘기거든요. 나처럼 현지에서 우리 음식을 만드는 외국인 요리사에게 상을 줘도 좋고요. 그러면 결국 우리 농산물을 쓸 수밖에 없잖아요. 1차 산업이 모든 산업의 근간이니까 우리도 그렇게 활동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 각국의 현지인이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한국 재료를 쓸 수 있도록 해야죠. 나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재료로만 프랑스 음식을 만들어 보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Q 최근에는 요리사들이 모여 의견도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는 일이 많은데요. 힐링셰프에 찾아오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이 모임을 알게 되고 느낀 거는 즐거움을 나눈다는 점이었어요. 대가도 없이 서로 소통하길 원하고 정보를 나누는 것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모임이 더 활발하게 이뤄져서 더 많은 요리사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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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 시연이 끝난 후 박 명장의 강연 시간이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박 명장은 네 가지 키워드로 자신의 요리 철학을 간략하게 설명했는데, 기술, 긍정, 인내심, 인간의 정을 자신의 중요한 키워드로 꼽았다. 특히 자신의 오른손 검지가 잘린 사건으로 생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강조했다.
“주방은 위험하고 일은 힘들다. 이렇게 투덜대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한 손가락만 다친 걸 감사하게 여기며 살고 있어요.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방은 놀이터입니다. 놀이터는 쉼도 주고 즐거움도 주잖아요. 주방에서는 늘 즐겁게 일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19번째 모임이었던 이번 행사는 서울에 있는 에이 셰프 아카데미에서 열렸다. 약 120명의 요리사 및 관련 종사자들이 모여 치즈 강연, 요리 시연 등을 참관했으며 매일유업에서 후원한 치즈로 요리대회도 진행했다. 프로마쥬의 김은주 대표는 치즈의 분류방식과 제조 과정 등 치즈에 대한 정보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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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사진 제공 : 힐링셰프 임상진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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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이 인규

이 인규

‘미식에는 층위가 없다. 단지 아직 느끼지 못한 음식이 있을 뿐.’ 이래 생각합니다.
비록 글로 배운 음식문화이지만, 혀로 배우고 사색하기 시작하면서 그 한계를 넘고자 합니다.
나에게 있어 한계는 맛을 표현하는 글인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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